아름다운 사람
부모는 돌아가시면 땅에 묻고, 자식은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던가. 목숨보다 귀한 자녀의 예기치 않은 죽음만큼 부모를 비통하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
엊그제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지난 5월 이라크에서 참수 당한 미국인 닉 버그의 아버지 마이클 버그가 10월에 한국을 방문한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국내 반전단체인 다함께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그는 서울과 부산에서 강연을 통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할 것이라 한다.
당시 닉 버그가 참수된 후 신문지상에 실렸던 마이클 버그의 사진은 내 가슴에 두고두고 남았었다. 그는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다른 가족을 품에 안고 다독이는 모습이었는데, 그의 표정은 처연했으나 세상을 향한 분노나 원망의 기색은 읽을 수가 없었다. 그의 표정은 오히려 슬픔을 지그시 안으로 삭히는 듯한 모습이어서 보는 이의 가슴을 더 찡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자식의 죽음 앞에서는 주위 시선도, 체면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닥에 나뒹굴거나 실신해 버리는 많은 한국 부모의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내게 작은 상념을 불러일으켰었다. 우리 한국인들이 보다 감정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일까, 어쩌면 미국인들과는 비교가 안되게 힘들고 모진 삶을 살아온 탓에 설움이 그만큼 깊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한국인들에게 자식이란 결코 너는 너가 되지 못한다. 대부분의 경우 너는 나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통함이 절절히 배어나는 그의 모습은 아들에 대한 그의 사랑이 어느 한국 부모 못지 않게 지극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때 나는 그가 아름다운 사람일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 후 나는 그가 고 김선일씨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으며, 이라크 전에 반대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 들었다. 그가 지난 5월 영국의 전쟁저지 연합에 전달한 서신은 듣는 이에게 많은 것을 성찰케 한다.
“나는 칼을 휘두른 사람이 자신의 손아귀에서 닉의 숨결을 느끼고 그가 실제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나는 이 살인자들이 그 짧은 시간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싫어했을 것이라 믿습니다. 나는 내 아들의 생명을 앗아간 그 살인자들보다 자리에 앉아 생명을 앗아가고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의 생명을 파괴하는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을 더 참을 수 없습니다. 미국이 공격을 받던 날, 그 비극적인 날, 우리는 무엇을 했어야 했을까요? 우리는 적이라 딱지 붙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중단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어야 합니다”
테러의 수단과 방법이 날로 극악해지고, 그 대상이 어린이들에게까지 무차별 확산되는 요즈음 그의 메시지는 얼마나 호응을 얻을까. 하지만 나는 그의 메시지에서 인간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보게 된다.
내 아들은 그의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도 납치자들에게서 선을 보려했을 것이라는 그는 내 아들의 인생은 끝이 났지만 평화를 수호하려던 그의 일은 계속될 것이라 말한다. 그의 메시지가 세상을 향해 적의를 품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감동의 울림으로 다가가기를 빌어본다
한수민/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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