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하탄 31가에 있는 성 프란치스코 성당의 김기수 신부(55)는 탈북자 돕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특이한 가톨릭 성직자이다. 그는 미국과 한국에서 탈북자를 돕기 위한 모금활동을 하고 일년 중 몇 달씩 중국에 머무르면서 탈북자 구호활동을 편다.
김 신부가 탈북자를 돕는 방식은 흔히 알려진 방식과는 달리 특이하다. 탈북자들을 남한 등 다른 나라에 정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북한에 다시 돌아가 잘 살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해주는 것이다. 그는 탈북자들이 북한에 되돌아 가서 잘 살게 되면 인도적인 구제 목적을 달성할 뿐만 아니라 북한이 변할 수 있게 한다는 확신에 차 있다.
김 신부는 성 프란치스코회의 수도사이다. 수도사들은 사목활동을 위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수도를 목적으로 공동체 생활을 하는데 교회의 사제가 부족하여 사제직을 맡아 사목활동을 하기도 한다. 성 프란치스코회원은 전세계에 남자 회원 5만여명이 있고 뉴욕관구에는 700여명이 있는데 이 가운데 김 신부는 유일한 한인 수도사이다. 김 신부는 맨하탄의 성 프란치스코 교회의 신부이지만 이 성당 안에 있는 수도원에서 생활한다.
일반 사람들에게 ‘평화의 기도’로 잘 알려져 있는 성 프란치스코는 귀족 출신이었으나 자신의 재산을 모두 빈민에게 나누어주고 구걸생활로 생애를 보냈다. 수도사들은 이같은 가르침을 본받아 가난한 사람의 질병 치료와 빈민 구제에 열심한다. 성 프란치스코회는 곳곳에서 학교와 병원을 세웠고 빈민구제사업을 했다. 맨하탄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은 1929년 미
국의 대공황 때 세계에서 처음으로 홈리스에게 빵을 나눠주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75년간 하루도 걸르지 않고 빵을 나눠주고 있다.
김 신부는 이 성당에서 홈리스에게 빵을 나눠주는 일을 했다. 그런데 1994년경 부터 북한에서 굶어 죽고 있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는 뉴스가 세계에 알려지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김 신부가 홈리스들에게 빵을 나눠주고 있었는데 문득 북한동포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미국의 홈리스는 어디를 가도 얻어먹을 데가 있는데 북한동포들은 얻
어먹을 데가 없다. 굶어 죽고있는 우리 민족부터 구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수도원장에게 말했더니 원장은 “당연히 자기 민족을 도와야지, 돈을 줄테니 도와주라”고 흔쾌히 응낙했다고 한다.
이리하여 1997년 ‘성 프란치스코 선교 구호회’가 설립됐다. 연방과 주정부에 등록을 하고 북한 구제를 위한 모금활동에 들어갔다. 김 신부는 이듬해인 1998년 6월 밀가루 200톤을 가지고 방북, 안주탄광에 나눠주고 10월에 또 밀가루 200톤을 안주탄광에, 의약품 8만달러어치를 평양의 유아원에 전달했다. 그리고 10월 말 기차를 타고 신의주를 거쳐 단동으로 나오는
데 추운 날씨에 아이들이 여름옷에 맨발로 방황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매우 아팠다고 한다.
미국에 오자마자 옷을 모으기 시작, 그 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옷 5 컨테이너를 북한에 보냈다고 한다.그런데 1999년부터 탈북자가 속출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김 신부는 1999년 여름 중국으로 가서 두만강가의 마을을 찾아다니며 탈북자들의 실태를 알아보았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농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농장주로부터 착취를 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 해 12월 도문 근처의 땅 500 헥타르를 중국정부에서 50년간 임대하여 탈북자 정착촌을 만들었다.
당시만 해도 탈북자 문제가 심각하지 않아 중국정부가 방임상태였는데 2001년부터 탈북자들의 대사관 진입이 시작되면서 중국이 탈북자를 체포하기 시작했다. 당시 추산으로 30만에 이르던 탈북자의 3분의 2가 체포됐고 정착촌도 벌금을 물고 금지됐다고 한다.
그 후부터 김 신부는 숨어지내는 탈북자를 찾아 돕기 시작했다. 거리에서 배회하는 탈북자를 만나면 우선 식당에 데려가서 밥을 사 먹이고 탈북자들이 밥을 먹는 사이 김 신부는 시장으로 달려가 옷을 사서 갈아입혔다. 그리고 아픈 사람은 병원에 데려가 치료해 주었다
탈북자들의 사정을 들어보면 대개 북한에 노약자 등 가족을 남겨두고 돈을 벌기 위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면 북한에서 1년 정도 살 수 있는 돈을 주고 택시를 태워 국경까지 데려가 북한에 되돌려 보낸다고 한다. 북한에서 군출신 또는 수용소 탈출자로 반동분자로 몰린 사람들은 북한에 되돌려보내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정착을 돕는다고 한다.
김 신부는 이런 일을 하기 위해 1년 중 여름에 2개월, 겨울에 3개월을 북한과 국경지역인 중국땅에서 보낸다. 한 번 중국에 가면 탈북자 150여명은 이렇게 되돌려 보낸다고 한다.
북한에서 1년간 생활비는 다섯 식구를 기준하여 과거에는 200달러 정도였는데 지금은 인플레로 500달러는 든다고 한다. 탈북자들에게 이 돈을 줘서 돌려보내면 큰 장사 밑천이 된다는 것이다. 청진에서 생선을 사서 무산에 가서 팔고 거기서 옥수수를 사다가 청진서 파는 식으로 자립의 기반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만났던 탈북자 가운데는 10년간 쌀 한 톨 먹어보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사람에게 생전에 보지도 못한 사람이 돈을 주니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김 신부는 이들에게 결코 종교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이 누구냐고 물으면 “나는 천주교 신부다. 천주교 교인들과 동포들이 없는 돈에서 모아주는 것이니 용기를 내서 아무쪼록 잘 살기를 바란다”는 말이 고작이라고 한다.
탈북자들을 돕고 있는 김 신부는 누구보다도 어려운 사람들의 처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충남 서산의 농촌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를 마치고 고학으로 고등학교를 다니다 학업을 마치지도 못하고 철 공장에 취직했다.
그 후 군에 입대하여 운전병으로 월남에 파병되어 한국군이 완전 철수할 때까지 월남에서 복무했다. 귀국하여 제대한 후에는 미국계 회사에 트럭
운전사로 취업하여 이란에 파견되었다가 1979년 이란 혁명으로 미국회사가 철수할 때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는 미국에서 뒤늦게 고교 수료증을 받아 보스턴대학에 입학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천주교 교인이 아니었고 천주교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없었다. 그의 꿈은 케미칼 엔지니어링을 공부해서 공장을 만들어 돈을 벌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예수회 수도사인 월터 취체크 신부의 <러시아에서 그 분과 함께>라는 수기를 읽고 감동, 천주교 성당을 찾게 되었다
고 한다. 그리하여 그는 보스턴의 브룩라인 천주교회에서 영세를 받고 새로운 삶의 길을 걷게 된다.
김 신부는 메릴랜드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여 학사학위를 받고 또 워싱턴 D.C.의 워싱턴 신학대학 5년 과정을 이수한 후 1996년 신부로 수품 받았다. 이어 처음으로 부임한 곳이 맨하탄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이다.
그 당시 이 교회에는 미국인 교인이 수 천명으로 10부 미사를 드릴 정도였는데 한인 사제는 물론 없었고 한인 교인들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김 신부가 부임한 후 맨하탄 한인타운의 교인들이 나오기 시작하여 한국말로 고해성사를 하는 교인들이 늘었다. 그러자 이듬해인 1997년 원장이 김 신부에게 한국말 미사를 만들라고 하여 한국말 주일미사를 따로 드리게 되었는데 처음 50여명으로 시작한 한국말 미사가 이제는 400여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지금은 김 신부 외에 한인 수녀 1명이 있고 김 신부가 탈북자들을 돕는 일로 성당을 비울 때는 학생신부가 대신 일을 맡는다.탈북자를 돕는 일로 중국의 공안당국에 세 번이나 체포되기도 한 김 신부는 “탈북자를 북한에 돌려보내 잘 살게 한 것이 무슨 잘못이냐”고 떳떳하게 주장해 모두 풀려났다고 한다.
그는 심양의 북한 영사 등 북한관계자들을 만나기도 했다고 한다. 북한측에 “아예 북한에서 구제사업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더니 북한측은 평양 부근서 북한에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 차별적 구제는 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는 것이다.
요즘 탈북자들을 돕는 많은 사람들이 탈북자들을 제 3국을 거쳐 한국에 빼돌리는 방법을 쓰는데 김 신부는 자기처럼 북한으로 되돌려보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그렇게 하면 남북관계와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피할 수 있고, 한국내의 사회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외부세계를 경험한 사람들이 다시 북한에 돌아감으로써 북한 내부의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탈북자들을 진정으로 구제하는 일은 이들이 가족과 함께 잘 살 수 있게 하는 것이며 북한사람의 변화로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김 신부의 말은 경청해야 할만한 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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