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향기’(Scent of a Woman)는 제목과는 달리 눈 먼 퇴역 장교와 고등학생간의 사랑을 그린 영화다. 알 파치노가 스타로서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는 이 영화는 그의 탱고 솜씨를 보기 위해서라도 한번은 감상할 만한 명화다.
동부 명문고에 장학금을 받고 다니고 있는 찰리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부자집 아이들이 교장 차에 못된 짓을 하는 것을 우연히 본다. 교장은 그에게 범인이 누군지 대라고 문초하고 만약 이를 거부할 경우 퇴학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찰리는 친구를 배신하고 살아날 것인지 의리를 지키다 인생을 망칠 것인지 고민에 빠진다. 그러던 중 그는 추수감사절 연휴 동안 장님을 돌봐달라는 광고를 보고 응한다. 그렇게 만난 퇴역 중령 프랭크는 괴팍한 성질로 사사건건 찰리를 괴롭히지만 함께 뉴욕 여행을 하는 동안 둘 사이 정은 깊어가며 장님 생활에 지쳐 목숨을 끊으려던 프랭크를 찰리는 간곡한 호소로 살려낸다.
학교로 돌아온 찰리의 퇴학 여부가 결정되는 징계 회의장에 그의 후견인 자격으로 뜻밖에 나타난 프랭크는 당근과 채찍으로 찰리를 위협하며 친구를 배신할 것을 종용하는 교장을 준엄히 꾸짖는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무엇이 옳고 그른가는 항상 분명했다. 정말 힘든 것은 옳은 일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옳은 일을 하려는 찰리를 벌주려는 것이 미래의 지도자를 키워낸다는 당신 학교의 교육 방침인가.” 징계위원회는 그 자리에서 찰리의 무죄를 선고하고 교장은 망신을 당하며 회의장은 환호의 도가니로 뒤바뀐다. 진정한 교육의 목적과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두로 하여금 두고두고 되씹게 만드는 장면이다.
올바른 일을 하는 것은 무엇이 옳은 일인지 아는 것보다 몇 배나 어렵다. 특히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은 항상 대중이 원하는 말을 하며 살아야 한다. 이런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대중의 입맛에 맞춰 말하고 이들의 기분을 거스르는 것은 아무리 진실이라도 입을 다무는 것이 몸에 배게 된다.
현재 테러와의 전쟁 못지 않게 장기적으로 미국의 미래를 위협하는 것은 소셜 시큐리티와 메디케어를 포함한 사회 복지 프로그램이다. 1935년 대공황이 한창이던 시절 가난한 노인들을 구제하기 위해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만든 소셜 시큐리티는 가장 인기 있는 정부 프로그램의 하나다. 지금까지 노인들이 안락한 노후를 보내는데 기여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루즈벨트가 이 프로그램을 만들었을 때 미국인들의 평균 수명은 60대 초반이었고 20명의 근로자가 1명의 노인을 부양했었다. 그러나 이제 평균 수명은 10년 이상 늘어났으며 근로자 3명이 1명의 은퇴자를 먹여 살리고 있다. 평균 수명과 노인 인구는 나날이 늘어나 80세를 넘어 살고 노동 인구와 은퇴 인구의 비율이 2대 1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10여 년 후면 소셜 시큐리티 기금은 적자로 돌아서고 이로 인한 재정 적자는 장차 26조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현 미국 연방 예산이 연 2조 달러가 조금 넘으니까 거둬들인 돈을 10년 동안 여기에만 쏟아 부어도 모자랄 지경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세금을 올리거나 혜택을 줄이는 것, 수혜연령을 높이거나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외에는 방법이 없다. 어떤 방식을 택하더라도 단기적 고통이 따르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부시와 케리 후보 모두 고통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고 있다. 미국 최대 유권자 블럭인 노인 표가 무섭기 때문이다. 부시는 그나마 페이롤 택스의 일부를 개인 은퇴 구좌로 전환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라도 내놓고 있지만 케리는 모래 속에 머리를 묻은 타조처럼 눈을 감고 파산을 향해 가는 소셜 시큐리티 앞날을 못 본 척 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미국과 같이 거대한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미국민 뿐이다. 재정 파탄과 이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미리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유권자, 그 중에서도 현재 혜택을 누리고 있는 은퇴자다. 미국민과 정치인들이 하루 속히 모래 속에 묻은 머리를 들기 바란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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