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칠레에서 열리는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회의 참석 차 가는 길에 한인이 가장 많이 모여 살고 있는 LA를 방문했다. 취임 1년 9개월 만이라 약간 뒤늦은 감은 있지만 해외 한인의 상징적 중심인 LA에 들러 한인들이 사는 모습을 둘러보고 커뮤니티 대표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오랜 기간 미국에서 생활했고 많은 미국 정치인과 교분을 맺어온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달리 취임 전 한번도 미국에 와 본 적이 없는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되자 한국 정부의 미주 한인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줄어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다. 또 대통령 취임 후 첫 미국 방문시 LA가 일정에서 제외되자 이를 섭섭하게 생각한 한인도 많았다. 거기다 최근 들어 미국에서 오래 생활한 미 시민권자까지 군대에 보내자 과연 한국 정부가 해외에 살고 있는 한인들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병역 의무를 피하기 위한 원정 출산 등 얌체족을 단속하고자 하는 정부의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우를 범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200만 미주 한인을 포함한 해외 인력은 한국의 발전을 위해 여러모로 기여할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이다. 몇몇 병역기피자를 잡기 위해 유능한 1.5세나 2세들의 발걸음을 한국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면 한인들에게나 한국에게나 모두 불행한 일이다.
최근 들어 미주 한인들 사이에 참정권을 달라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도 이것이 없이는 한국 정부로부터 소외당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방문기간 동안, 그리고 한국에 돌아간 후 미주 한인들의 목소리를 귀기울여 듣는 노력을 배가해 줄 것을 이곳 한인들은 바라고 있다.
흔들리는 한미 관계도 이곳 한인들의 걱정거리다. 두 나라 사이가 나빠지면 나빠질수록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에게 불이익이 미치기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은 지금 정치, 경제, 군사, 기술, 문화적으로 세계 유일의 수퍼파워다. 자주 국방도 좋고 민족 공조도 좋지만 이 현실을 무시한 모든 주장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한미 관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 차다. 핵 개발도 핵 개발이지만 최악의 상태인 북한의 인권 침해에 대해 한국 정부가 꿋꿋한 침묵을 고집하고 있는 것을 워싱턴의 대다수 정치인과 인권 운동가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인뿐만 아니라 많은 한인들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LA에서는 두 달 전 미 전국에 흩어져 있는 한인 목회자 1천 여명이 모여 북한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기도회를 가진 바 있으며 젊은 세대들로 이뤄진 ‘북한해방’(LiNK) 등도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다.
상하 양원을 만장일치로 통과한 ‘북한 인권법’이 발효되고 유엔과 유럽 연합이 북한 인권 침해를 규탄하는 등 탈북자와 북한 인권은 이제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더군다나 보수 기독교도들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재집권에 성공한 부시 행정부는 지금 잔뜩 힘이 실린 상태다. 유독 한국 정부만이 이에 대해 묵비권을 고집하는 한 진정한 한미 관계의 개선은 요원하다.
노 대통령의 LA 방문을 환영하며 부시 대통령과의 성공적인 회담을 통해 한미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고 돌아가서는 미주를 비롯 모든 해외 한인을 껴안는 포용력 있는 대통령이 되어주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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