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수출국기구(OPEC)는 1973년 9월 이스라엘과 아랍권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 편을 든 서방 각국을 응징하기 위해 기름 값을 70% 인상한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같은 해 12월 열린 테헤란 회의에서 OPEC은 다시 130%를 추가 인상했다. 그 후 OPEC는 75년과 77년, 79년, 80년 계속 유가를 올려 70년대 초 배럴 당 3달러에 불과하던 석유 가는 80년대 초 30달러를 상회했다.
오랫동안 고유가 시대가 계속되자 배럴 당 100달러가 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예측이 나돌았다. 그러나 80년대 중반 배럴 당 40달러에 육박하던 석유 값은 급전직하하기 시작, 한 때는 배럴 당 5달러까지 떨어졌다. 고유가와 함께 석유 개발붐이 일고 에너지 절약으로 수요가 줄어든 데다 OPEC 각국이 수입을 늘리기 위해 쿼터를 상습적으로 속인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를 때나 내릴 때나 향후 유가를 제대로 맞춘 사람은 없었다.
금값도 마찬가지다. 70년대 중반 온스 당 30~40달러 선이던 금값은 1980년 850달러까지 치솟았다. 그러자 1,000달러는 물론이고 2,000달러, 3,000달러도 머지 않아 돌파할 것이란 전망이 구구했다. 그러나 불과 수년 후 금값은 200달러 선으로 떨어졌다.
기름 값과 금값은 달러화의 동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국제 시장에서 이들 상품은 달러화로 결제되기 때문이다. 대체로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 이들 가격은 내려가고 약세로 돌아서면 이들 값은 오른다. 그러나 상품 가격 동향처럼 달러의 앞날을 정확히 내다보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대부분의 전망은 지난 수년간의 흐름이 앞으로 계속될 것이란 관성의 법칙을 반복하는데 불과하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치러지고 한국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한 때 달러 당 원화 환율이 660대까지 내려간 일이 있었다. 그 때 나온 대부분의 전망은 원화 강세는 계속될 것이며 500대 진입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환율은 그 때를 저점으로 꾸준히 상승, 1997년 IMF 사태 때는 달러 당 2000원 근처까지 이르렀다. 올림픽을 치른 지 10년도 안 돼 이런 사태가 벌어지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최근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이 가속적으로 떨어지며 1050원대를 위협하고 있다. 이렇게 되자 아니나 다를까 1000대가 깨지는 것은 시간 문제며 달러가 오를 조짐은 전혀 없다는 관측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미국의 무역 수지 적자가 연간 6,000억 달러에 이르고 있는 데다 부시 행정부가 수출 진작을 위해 의도적으로 달러 약세를 원하기 때문에 달러는 더 떨어질 수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3년 전 80센트면 살 수 있던 1유로는 이제 1달러 30센트까지 올랐다. 수년 사이 60%나 폭등한 셈이다. 3년 전 금값은 온스 당 250달러로 현 450달러의 절반, 기름 값은 배럴 당 14달러로 한달 전 최고치 55달러의 1/3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당시 유로와 금, 기름을 사두면 횡재를 할 것이라던 예언가는 없었다.
그러나 3년 간 트렌드가 계속된 지금 달러는 떨어지고 금과 기름 값은 언제까지나 오르리라는 확신이 전문가들 사이에 퍼져 있다. 투자가들의 심리 동향을 재는 지수는 금과 기름의 경우 사상 최고의 낙관을, 달러의 경우 사상 최고의 비관을 기록하고 있다.
상품은 정치인과 닮아 있다. 한번 권력을 잃어 찬밥 신세가 되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다 어쩌다 다시 권력을 잡으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온갖 사람이 몰려와 문전성시를 이룬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살아 있는 한 영원히 오르거나 내려가는 상품은 없다. 대체로 낙관과 비관이 정점에 달한 순간 터닝 포인트는 찾아온다. 시장의 역사가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그래서다. 쏟아지는 환율과 기름, 금값 동향에 관한 뉴스는 너무 믿지 않는 것이 좋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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