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춥다. 찬바람이 매섭게 파고든다. 그리고 보니 벌써 12월이다. 한 해가 또 가고 있다. 2004년이 과거 속으로 잠기고 있는 것이다. 어김없이 등장한 구세군 냄비. 나눔을 호소하는 종소리. 세밑이 어느덧 옆에 와있음을 실감케 한다. 바빠지는 세밑이다. 이 해가 가기 전에, 새해가 되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이 떠올려져서다. 한 번 얼굴이라도 보아야지. 안부라도 전해야 할텐데. 그리운 얼굴들이 스친다. 12월은 그래서 들뜨는 달이다.
세밑의 시즌은 만남으로 시작된다. 동문회다. 고향 사람들의 모임이다. 망년회다. 신문마다 광고가 요란하다. 모임의 광고다. 벌써부터 호텔은 만원이다. 만남의 행사가 예년보다 더 풍성하다. 오래 못 보던 친구와 뜻밖의 해후가 이루어졌다. 함께 했던 시간들의 소중한 추억. 이야기꽃이 핀다. 만남은 좋은 것이다. 그 자체가 인생의 아름다움이다. 축복이기도 하다. 그리운 사람을 만나 함께 하며 먹고 마신다. 춤을 춘다.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그리고 설날로 이어지는 세밑은 그래서 감사의 계절이다. 즐거운 계절이다.
올 따라 추위가 더 극성스럽다. 이상기후인가. 본격적 겨울이 왔음을 알린다. 구조조정 때문에 일자리를 잃었다. 불경기에 삶의 터전이 무너져가고 있다. 실직한 가장에게, 한국에 가족을 두고 홀로 살아가고 있는 불법 체류자에게 겨울은 더 춥게 다가온다. 깊은 상실감 때문이다. 뼛속까지 새겨지는 외로움 때문이다. 그리고 위로 받지 못해 겨울 바람은 더 매섭게, 더 차게 파고드는 것이다. 세밑은 그래서 음울한 계절이 되기 쉽다.
조명이 휘황하다. 발 디딜 틈이 없다. 지난 한해를 돌아보고 회포를 푸는 모임이다. 다정한 눈길. 환한 미소. 글라스에 담긴 와인 빛이 새롭다. 밝은 빛 아래 모여 즐겁게 노는 사람들. 그 모습을 창문 밖 어둠 속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세밑은 스산한 계절이다.
먹고 마시고 춤춘다. 해마다 똑 같다. 달력을 본다. 올해에도, 그러니까, 몇 차례 참석해야 하나. 같은 일만 되풀이되고, 또 되풀이된다면 만남의 의미는 퇴색된다. 그 만남이 오히려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망년회는, 세밑의 모임은 삶을 지치게 하는 공해가 될 수도 있다.
나눔이 있어 감사의 계절이다. 물질을 나눈다. 마을을 함께 하고 사랑을 나눈다. 나눔이 있을 때 12월은 따뜻해진다. 세밑은 밝아지는 것이다. 작은 자들, 지극히 작은 자들이 주변에는 얼마든지 있다. 아주 작은 나눔이지만 소외된 주변의 작은 자에게는 큰 위로가 된다. 나눔을 통해 사랑을, 축복을 이웃에 흘려 보내는 ‘너와 나’가 되는 세밑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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