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또래 입양인 한인 친구 둘이 있다. 백인 천지인 아이다호 촌에서 자란 데이빗과 피터는 의기 투합해 2년 전 본토를 제외하고 한인들이 가장 많이 몰려 산다는 LA근교에 새 둥지를 틀었다.
직장도 구하고, 새로 시작해 본다는 의미도 있었겠지만, 가끔 만나 술 한잔하며 얘기해보면 거대한 한인사회가 형성된 이곳에서 ‘나’와 ‘모국’, 즉 뿌리에 대한 조심스런 탐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몸 속에는 분명히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지만, 한인타운에서 맛보는 음식들과 한인들의 모습은 이들에게 매번 새롭고 어렵다. 영어메뉴 없는 한식당에서 한국음식을 시키는 일이 ‘한국 놈이 음식하나 제대로 모르고 왜 이래?’하는 표정의 웨이트리스 ‘아줌마’ 눈치가 보여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아시안이라곤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곳에서 자란 친구들이라 한인 여성들을 보면 가슴도 설레고, 말도 걸어 보고 싶지만 자신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두려워 조심스럽다.
입양인들이 한번은 꼭 넘어야 할, 아니 평생 지고 가야할 숙제가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그로부터 출발하는 뿌리 찾기에 대한 욕망이라면 이들은 한국이 아닌 LA 한인사회에서 그 연습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입양됐다는 사실을 알았을 뿐 온전한 미국인으로 자라난 이들에게 한국, 그 완충역할을 할 수 있는 한인사회에 다가서기는 그 만큼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미주 한인들의 가정에서 자라나고 있는 한국 입양아들은 데이빗과 피터보다는 축복이라고 봐야한다. 입양 가정에서 갖는 고민은 물론 있지만, 따뜻한 한인 부모들이 한국문화와 뿌리도 함께 가르쳐주는 과정에서 나중에 성인이 된 아이들이 겪을 어려움은 한층 덜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달초 열린 한국 어린이를 입양한 한인부모들의 모임인 한국입양홍보회(MPAK) 미 서부지역 모임은 이런 생각을 더욱 확고하게 해주는 기회였다. 아이들을 키우는 고민을 나누고 어떤 정체성을 심어줘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부모들의 얼굴에서, 입양아란 사실을 굴레가 아닌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당당히 성장할 아이들의 모습이 선하게 다가왔다.
자신이 입양인으로서 MPAK을 만든 스티븐 모리슨씨의 말처럼 한인 가정에 입양된 아이들은 새로운 기회를 얻은 것임이 분명했다.
2004년은 한국의 해외입양 50주년을 맞는 해여서 입양인들의 세계대회까지 서울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때에 따라 간다고 올해 유난히 입양인들에 관련된 보도도 쏟아져 나왔던 것은 분명하지만 2004년이 가도 그들의 고민과 뿌리찾기를 위한 눈물나는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데이빗과 피터가 한국을 방문해 길거리에서 떡볶이도 먹어보고, 낳아준 엄마를 찾아 포옹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배 형 직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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