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NFL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초반 쿼터백 3명이 뽑혔다. 종합 1번 지명권을 쥐고 있던 샌디에고 차저스는 ‘혈통’을 믿고 일라이 매닝을 지명했고, 뉴욕 자이언츠는 4순위에서 필립 리버스의 이름을 불렀다. 이 때 아들의 자이언츠행을 바랐던 벤 로슬리스버거의 아버지가 실망을 감추지 못한 나머지 핸드폰을 내동댕이친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로슬리스버거는 결국 11번 지명권을 들고 있던 스틸러스에 뽑힌 데 만족해야 했다.
그 당시 세 선수의 기량은 ‘도토리 키 재기’로 평가됐다. 아버지 아치와 형 페이튼이 이미 이름을 날린 덕에 일라이가 가장 위험부담이 적은 재목으로 평가됐지만 체격조건은 로슬리스버거가 압권이었고 차저스가 정작 원했던 쿼터백은 패스가 정확한 리버스였다.
하지만 차저스는 “종합 1번 지명권으로는 가장 가치가 높은 선수를 뽑아야 한다”며 온 가족이 “차저스는 싫다”고 외쳤던 일라이를 끝내 지명했다. 일리이와 아버지 아치 매닝은 그때 수년째 바닥을 헤매고 있는 차저스는 “잘될 집”이 아니라며 차저스에 뽑히면 아예 풋볼을 하지 않겠다는 공개적인 ‘협박’까지 했다. 차저스 구단 사상 최악의 망신이 분명했다.
결국 차저스는 일라이를 자이언츠로 트레이드했다. 정작 원했던 리버스에 내년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까지 얹혀 받는 짭짤한 장사를 했다. 차저스가 뽑지 않으면 15순위까지 밀려날 것으로 예상됐던 리버스는 그 덕분에 트레이드 미끼로 전체 4번으로 뽑힌 셈이다.
8개월 뒤 이 세 사람의 신세는 너무나도 다르다. 우선 가장 먼저 뽑힌 매닝은 5승8패로 헤매고 있는 자이언츠에서 스타터가 된 뒤 전패를 기록중이다. 반면 차저스는 10승3패로 플레이오프 진출은 시간문제다. 지금은 매닝이 바보처럼 보인다.
하지만 차저스로 간 리버스도 초라한 신세다. 트레이닝 캠프에만 제시간에 합류했으면 주전 쿼터백으로 뛰는 것이었는데 정작 차저스가 원하던 쿼터백은 자신이었으니 4순위가 아닌 1순위 지명선수 연봉 패키지를 달라며 시간을 끌다가 주전 쿼터백의 자리만 빼앗긴 셈이 됐다. 차저스는 리버스가 합류를 거부하는 사이에 주전 자리를 굳힌 드루 브리스의 선전에 돌풍의 일으켰다. 리버스는 이제 내년에도 주전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
가장 잘 풀린 선수는 로슬리스버거다. 아버지가 핸드폰을 집어던지며 화를 냈지만 공수가 가장 탄탄한 팀에 뽑혀 신인 쿼터백으로서는 거의 들어볼 수도 없는 전승가도를 달리고 있다.
사람 일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아직 끝난 스토리는 아니다. 내년에는 스토리가 또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며 10∼20년 후에 뒤돌아보면 결론은 또 다를 수도 있다. 그때그때 말은 많아도 사람들은 결과만 보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규태 <특집1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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