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적이지만 금융사기는 믿음에서 시작된다. 사기는 믿음을 얻어내는 능력이 없으면 성립이 안 된다. 흔히 사기는 허황된 수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약점이 원인으로 지적되지만 이는 단지 필요조건일 뿐이다. 왜냐하면 일확천금을 원하는 마음은 인간의 본성으로 누구에게나 다 있지만 그렇다고 다 사기에 빠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믿음을 만들어내야만 사기가 성립되는 충분조건이 이루어진다.
사기가 믿음으로 연결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우선 상당히 높은 수익률을 얘기한다. 고급스러운 분위기에서 멋있는 투자 설명을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몇몇 투자자들이 시도해 본다. 고수익을 체험한다. 처음에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다. 그러는 사이에 미리 시작한 사람들은 계속 고수익을 올린다. 의심이 차츰 바뀐다. 혹시 고수익 기회를 놓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점점 고수익의 투자가 사실이라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투자관계가 시작된다.
여기서 사기가 믿음을 얻는 요소를 읽을 수 있다. 포장, 사례, 체험 그리고 시간이다. 포장은 대개 고급스러운 사무실과 복장, 용모 및 차량 등 외형과 좋은 태도와 화려한 학력과 경력 및 뛰어난 화술 등 관계 능력으로 구성된다.
일단 포장이 만들어지면 몇몇 초기 투자자들에게 상당한 수익을 제공해 실제 사례를 만들어낸다. 이 때 상당수의 초기 투자자는 사회적 지명도가 있거나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 초기 대상자들은 고수익을 누리면서 주변에 체험담을 전해 주는 역할을 자의로 또는 어느 정도의 수수료를 받는 준 영업사원으로서 수행하게 된다.
이를 보면 사기에 빠지지 않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 수 있다. 막상 일이 터지기 전까지 믿어지지 않는 고수익이 계속 일어나는데 그 기회를 마다할 사람은 결국 투자할 능력이 없는 사람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투자도 비슷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도 사기를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따라서 사기를 피하는 길은 내 마음을 믿지 않는 것이다. 나의 판단이 사회의 보편적, 전문적 판단을 앞선다는 자기도취형 믿음을 거부하는 것이 최선인 셈이다. 자기도취형 믿음은 응분의 노력이나 대가없이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믿는 마음이다. 주식시장이 떨어지는데 은행이자보다 터무니없이 많은 수익률을 주식투자를 통해 보장해 준다는 말을 믿는 것은 주식시장과 제도 금융권보다 내 판단력이 낫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럴 수도 있다. 전설적인 투자 대가들이 그런 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보통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연구와 시행착오를 거쳐 전체시장보다 더 앞선 분석력을 갖춘 사람들이다.
빨간 불에 서지 않고 주행을 해도 사고 없이 경찰에 걸리지 않고 갈 수 있는 확률은 있다. 그러나 계속 빨간 불에 주행하면 언젠가는 사고가 나거나 경찰에 걸린다. 사회의 보편적 질서나 의견을 무시하고 내 판단이 낫다는 믿음은 바로 빨간 불에 몇 번 무사히 지나갔다고 해서 나는 빨간 불을 지나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 마음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의 질서는 대부분 개인보다 뛰어나다. 고수익의 유혹 앞에 나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겸허한 자세로 사회의 보편적 질서의 틀을 되새겨 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사기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면역책이다.
최운화/커먼웰스 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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