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유구무언’(有口無言)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는데 이 말 “입은 있으나 말이 없다는 뜻”으로 변명을 못함을 이른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안 쓰는 문자가 있으니 그것이 ‘유구불언’(有口不言)이라는 말이다. “입은 있으되 말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정이 거북하거나 따분하여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않거나 못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흔히 정치나 사회에서 되어지는 일을 보면 이런 형편이 딱 들어맞는다. 한국에서는 청문회다 인사공청-검증이다, 공직자 평가다, 지도층 인사에게 숨겨 놓았던 딸이 있다 하여 소란하고, 미주 한인사회에서는 무슨 투자다, 유명 인사가 모집한 사기다 하는 말들과 함께 매스컴에 등장하는 인사들을 보면 참으로 딱한 생각이 든다.
지금 저 사람들은 ‘유구무언’(有口無言)이며, 또 어떤 사람들은 ‘유구불언’(有口不言)에 들어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간단히 해본다.
교육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은 교육에 의해서만 인간이 될 수 있다”라고 하였다. 교육이라고 다 좋은 교육은 아닐 것이다. 교육을 언제부터, 또 누구에게 받았는가 처럼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공적인 교육을 받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의 오벨린이 1769년 시작한 유아교육에 원조를 두고 있다. 이 유아원은 그 후에 설립된 ‘킨더가튼’이나 ‘프리스쿨’ 같은 훌륭한 체계적인 교과과정을 위주로 한 교육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유아발달의 욕구를 충족해 주는 정도의 단순한 시도’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런 공적인 교육을 받기 전 먼저 사적인 교육이 있으니 그것이 가정이라는 교육현장이다. 부모로부터 집중적인 교육을 받게 되는데, 이 때 같이 좋은 교육의 적기는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말로서 할 말을 잘 가르치는 것이다. 만약 이 때에 자녀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도덕과 윤리를 품고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하면, 첫 번째 사회인 유아교육의 현장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그 어린이는 사회생활이 점점 힘들어지게 된다.
그래서 부모는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유구불언’ 하면 안 된다. 말하기가 거북해도, 사랑스러워도, 힘들어도, 바빠도 할 말을 하면서 가르칠 때 그 어린이는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물론 말로만 하고 행동이 윤리적이지 않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다.
그 옛날, 맹자의 어머니, 이율곡의 어머니, 이순신의 부모, 미국의 링컨의 부모 같은 사람들이 입을 열어 인간의 도리를 어린 시절부터 자녀들에게 가르친 것이 좋은 예가 된다.
부모가 ‘유규불언’ 하여 나중에 자녀가 잘못되면 사회, 사법, 행정제도 앞에 여기저기 불려 다니면서 정말로 ‘유구무언’ 하게 될 수도 있다.
강영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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