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신문에서 ‘KOREA’나 ‘KOREAN’이라는 단어들이 큼지막하게 눈길을 끌면 대개는 긴장을 하게 된다. 경험으로 봐서 기분 좋은 내용보다는 우울한 내용이 많기 때문 이다.
지난 2~3년을 돌아봐도 ‘악의 축’에서부터 ‘북핵’에 이르는, 북한 혹은 한반도 안보에 관련된 답답한 소식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다음에는 ‘개고기 먹는 민족’‘영어 잘 하려고 혀 수술하는 나라’‘성형수술의 천국’… 주로 우리의 이미지에 흠집 내기 딱 좋은 기사들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도도한 뉴욕타임스, 미국에서 발행 부수 1위인 USA 투데이가 모두 1면 톱기사의 제목을 ‘KOREANS’로 시작했다. LA 타임스도 1면 정 가운데에 같은 내용의 기사를 실었고,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그외 다른 신문들의 지면도 아마 비슷했을 것이다. 서울대 황우석 박사 팀의 줄기세포 연구 성과를 다룬 보도들이다.
지난 19일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 주최 연구 발표회에서 공개된 황박사 팀의 연구내용으로 지금 전세계가 들떠있다. ‘획기적 업적’‘산업혁명에 비견될 생명공학 혁명’‘치료 복제 분야의 엄청난 진전’… 쏟아지는 찬사가 어지럽다. 최첨단 과학분야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그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 내리는 평가가 그러하니 성과의 규모를 짐작할 뿐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고는 하지만, 황 교수가 내다보는 연구가 성공한다면 우리는 병 없는 삶이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내 몸의 체세포로 줄기세포를 만들어 이식을 하면 거기서 건강한 세포가 재생돼 손상된 부위가 치료된다는 이론이다. 지금은 난치병 환자에게서 떼어낸 체세포로 배아 줄기 세포를 만드는데 성공한 단계이다.
그 연구는 “어쩌면 20년은 걸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운 좋게도 1년만에 끝났다.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잘 풀린 셈이다”고 황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과학자로서 그는 어떻게 그런 성공, 그런 행운을 얻었을까. 정답은 ‘지극 정성’이라고 본다.
황 교수팀의 연구실에 머물며 영어논문 작성을 도운 피츠버그 의과대학의 제럴드 섀튼 박사가 뉴욕타임스 기자에게 말한 내용이다.
“그들은 1년 365일 연구를 한다. 단 예외가 있다면 윤년이다. 그때는 366일 연구를 한다. 매일 아침 6시30분이면 실험실에서 회의를 하는데 일요일만은 예외로 8시에 한다”
황 교수의 달력은 ‘월화수목금금금…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요일도, 명절도 없다는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거기에 대해 황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세포에게 토요일이며 일요일이 없는데 우리에게 설날이며 추석이 있을 수 없지요”
지극히 미세한, 그러나 살아있는 생명체를 다루자니 매 순간의 지극한 정성이 필요불가결하다고 한다. 그는 ‘하늘도 감동할 정성’을 연구진에 요구한다고 한다.
‘지극 정성’은 마음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손끝의 정성이 필요하다. 줄기 세포 실험실에서 다루는 난자는 지름이 0.1mm이다. 물로 눈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 난자를 채취해 난자 주변의 난구세포를 씻어낸 뒤 미세침으로 찔러 난자 속의 핵을 빼내는 작업을 하자면 손끝의 섬세함과 정성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작업을 단시간 내에 할 수 있는 것은 젓가락을 사용하며 단련된 한국인들의 유연한 손놀림 덕분이라고 황 교수는 틈만 나면 외국 언론들에 자랑을 한다.
한국 과학기술부의 전망으로는 2020년이면 무병장수 시대, 2025년이면 우주 관광이 실현된다고 한다. 그 모두가 ‘비현실’인 여기에서, 그런 삶이 ‘현실’인 그곳까지 가려면 많은 과학자들의 헌신적 노력, 그리고 여러 단계의 이정표적 성과들이 있어야 할 것이다.
줄기 세포등 생명 공학은 천재적 발상이나 거대한 시설보다 손 기술에 좌우된다고 한다. 최첨단 연구가 가장 원시적인 수작업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손재주가 자산인 한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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