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고
▶ 고세곤 <메릴랜드 거주 .전 구국향군 부사령관 >
미국 기독교단체의 민주화 지원
1875년 여름 NCC(기독교협의회)는 Korea Desk를 설치했다. Harvey 목사와 Sinnott 신부가 맡았다. Sinnott 신부는 상 하원 청문회 연사로 인권실태를 밝히고 미국의 대한정책 수정을 유도했다. Sinnott 신부는 동아 광고탄압부터 투쟁했고, 인혁당원의 고문 살인을 규탄하다 한국에서 추방되었다.
한국의 인권탄압을 시정코자 노력하는 주의 충성된 종이시다. 그는 불의를 용납치 않고 투쟁하는 행동하는 양심이다. Frazier 의원(국제소분과위원장)을 한국에 급파해서 병상에 누운 이세규 장군의 개인숙소까지 찾아가게 한 사람이다. 문명자 여사는 Sinnott 신부와 더불어 미국 국회와 백악관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 구속자 석방을 앞당겼다.
한미 연합투쟁
1976년 3월1일, 한미 연합으로 백악관 앞 데모를 결의했다. 이 데모는 민주단체는 다 하나로 진행했다. 3.1 민주선언 구속자 이름을 붙인 ‘백의한복’을 한 원로들이 나왔고 100여 명의 동지들이 나왔다. 김상돈(LA), 임창영(뉴욕), 김재준(캐나다), 문재린(캐나다), 김순경(필라델피아), 한승인(뉴욕)과 나는 데모 진행을 맡아 국무부까지 행진하고 구호를 선창했다. 카터 정부는 우리의 뜻을 받아주었고 임창영 박사는 부통령 몬데일을 20분 면담하고 석방 결의안을 제출했다. 그날 국무부에서는 우리의 의사 전달이 안되어 실망하고 돌아섰다.
Cyruss Vance는 민주당의 보수파로 박 정권을 많이 인정하는 사람이었다. 데모는 큰 규모였다. 이날 밤 또다시 친정부 성향의 황재경 목사 교회에서는 한경직 목사를 강사로 부흥회가 있었다. 이 부흥회는 정치성이 진해서 많은 오해를 남겼다. 당시 유신체제는 국제 여론을 무마키 위해 다방면으로 대처했다. 미국 상원 민주당의 진보파 케네디, 맥보번 처치, 바이 비판은 거셌고 하원은 친한파가 더 셌다.
박동선의 ‘조지타운 클럽’은 미국 정계를 친한으로 만드는데 힘썼다. 그러나 로비 방식은 뇌물공세에 의존하고 있었다. 당시 국회의장 칼 앨버트(민주)는 코리아 게이트 조사를 시작했다. 친한파 의원들이 스캔들로 의원직을 박탈당했고 의장 자신도 스캔들로 36년의 정치생활에 끝장을 보았다. 그의 여비서는 한국계였다.
고세곤 <메릴랜드 거주 .전 구국향군 부사령관 >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