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 논란과 관련, 황우석 교수와 정진석 대주교와의 만남에서 옳고 그름의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는 기사, 최근 한 목회자의 줄기세포에 대한 글을 읽고 생각해보았다.
내가 만나본 성직자들에 한할 경우 불행하게도 직위가 높을수록 실망한다. 교우들에게 끊임없이 사랑, 용서, 자선을 요구하면서 그들은 특권층의 신분을 은근히 과시하며 순진한 신자들 위에 군림한다. 고대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뜻에 거슬리면 무조건 신의 이름으로 가차없이 공동체에서 낙후시켜 왔다.
얼마 전 한 목회자가 줄기세포 반대의 뜻을 밝히는 글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명을 불순종했기에 인류는 누구나 죽어야 한다고 했다. 만약에 아브라함의 자손이 죽지 않고 지금까지 이 지구상에 득시글거린다면 생각만 해도 징그럽다는 형용을 했다. 고로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은 또한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무릇 신앙이란 확실치 않고 알 수 없고 보이지 않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희망하며 믿는 것이라 생각된다. 우주를 창조한 전지전능한 절대자가 무엇이 부족해서 인간이 죽고 나면 그 남은 자리를 메우기 위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게 하겠는가.
불과 몇 백년 전만 해도 우주와 인간의 육체는 알 수도 없고 해부할 수 없는 신비, 그 자체였다. 그러나 화란의 해부학자 Andrea Vesalius는 인체를 해부하여 근대 해부학의 시조로써 인류에게 지대한 공을 세웠고, Galileo는 우주를 해부하여 지동설을 세상에 알렸다. 그러나 이 둘은 교회로부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박해를 당했다. 일일이 열거하자면 어디 교회로부터 박해를 당한 사람이 이들 뿐이겠는가. 지금 와서 누가 Galileo와 Vesalius를 반종교적이며 반윤리, 비도덕적이라 비난할 수 있을까.
그 시대의 흐름에서 우주와 인간의 육체를 베일에 싸인 신비에서 하나하나 밝혀내고 있는 과정을 연구와 과학이라 한다면 그 또한 창조주께서 어느 누구를 선택하여 인류에게 도움이 되게 하는 신의 도구자라 이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는 한평생 수많은 인생들은 불치의 병으로 이미 살아서 지옥 문턱의 고통을 맛보아야 한다. 끝없이 반복하고 있는 이 불행을, 인생의 고통을 다소나마 덜어주기 위해, 인류에 대한 연민과 불타는 사랑으로 자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하늘은 그에게 막대한 능력과 지혜를 허락하여 틀림없이 빠른 시일 내에 하고자하는 일이 성공을 거둘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가 항상 솔로몬에 머물렀듯이.
동심초 / 비엔나,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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