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고
▶ 고세곤/메릴랜드 거주 .전 구국향군 부사령관
1980년 3월
서울의 봄이 오는 듯 했으나 봄은 인사만 하고는 사라졌다. 민주화의 꿈은 실현되는 줄 알았다. 김대중 씨의 한신대 강연 비디오를 입수해서 메릴랜드 실버스프링의 블레어 리 하이스쿨에서 시국강연회를 개최했다. 연사로 장석윤(육사 11기), 김경재(현의원), 그리고 본인, 우리 3인은 반정부 동지로서 이것이 반정부 운동의 마지막 대중집회가 될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1980년 5월18일
광주시 금남로는 무장군인으로 꽉 메워지고 있었다. 데모 현장을 일본 통신 뉴스가 보도해서 알게 되었다. 공수단의 무차별 사격으로 사망 236명, 부상 5,600명, 전체 구속자 1만3,500명이었다. 신군부의 만행을 규탄하는 데모가 1980년 5월 27일 백악관 앞에서 열렸다. 100여 명의 동포가 모였다. 미국의 태도는 실망스러웠다. 미제 무기를 사용하는데 작전 통제를 하고 막았어야 한다. 광주 성당의 윤공희 대주교 앞으로 송금(250달러)했다. 천주교는 희생자 유족 돕기에 열성적으로 임했다.
1981년 8월15일 통일회의
7.1 공동성명은 진전이 없었다. 노태우 정부에 와서 강영훈 총리와 연형묵 북한 총리 회담에서 미완의 공동성명을 보완하기 위해 논의했다. 그러나 합의된 것은 없었다.
1981년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통일회의를 소집했다. 워싱턴 DC의 하얏트 호텔이었다. 의사당에서 몇 블록 안에 위치했다. 미국 의회에 우리의 통일 의지를 천명하고 협조를 구하는 모임이었다. 혁신단체의 총 출동이었다. 성우학원, 노광욱, 최홍의, 최덕신, 최정열이 중심이었다. 반통일을 기정사실화하는 사람에게는 큰 충격이 되었고 미국의 양심세력은 환영하는 것 같았다. 국제협력은 통일 성취에 큰 변수이다.
고세곤/메릴랜드 거주 .전 구국향군 부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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