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는 잠언과 욥기와 함께 히브리 성경(구약)의 세 번째 부분인 성문서집에 속하며 이 세 권의 책을 지혜서라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코헬렛’(Qoheleth)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고 ‘교사’나 혹은 ‘지혜교사’를 뜻하는 직책이나 직함이다.
첫 두 장에서 코헬렛은 스스로 솔로몬 왕(970-928 BC)인 듯이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이는 단순한 수사학적 효과를 위한 것으로 여긴다. 전도서는 주전 300년에서 250년 사이에 쓰여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히브리 성경 가운데 제일 나중에 쓰인 것 중 하나다.
이 책의 첫 머리는 우리가 잘 아는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 라는 말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 구절은 전도서 전반에 걸쳐 여러 번 반복됐고 이 책의 끝을 장식하기도 한다. 이 ‘헛되다’(vanity)는 말은 물론 ‘공허’나 ‘무의미’와 같은 추상적인 뜻도 있지만 그 원어인 히브리어 ‘hebel’에는 ‘호흡’ ‘증기’, 혹은 ‘안개’같은 구체적인 뜻도 포함돼있다. 그리고 이 ‘헛되다’는 표현에 ‘바람을 쫓다’는 표현이 더해져 ‘쓸데없음’에 대한 이미지가 부각된다.
코헬렛은 솔로몬왕이 삶의 만족을 줄 수 있는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한 것으로 묘사한다. ‘관습적 지혜’가 삶의 만족을 줄 것으로 여기는 부귀, 영화, 명예, 덕망 뿐 아니라 지혜와 현명함, 그리고 관능적 쾌락까지 부족한 것 하나 없다. 그러나 코헬렛은 “그 모두가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전도서 1:14)고 뇌까린다. ‘관습적 지혜’에 따라 세상적인 것과 ‘움켜 쥠’에 집착하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코렐렛은 강조하고있다.
코헬렛은 단순히 ‘관습적 지혜’를 비난한 것에 그치지 않고 “의로운 길-현명한 길-을 따라가면 만사형통 할 것이다”는 관습적 지혜의 핵심 주제마저 거부한다(전도서 8:14). 죽음의 불가피성과 임의성이 우리가 관습적으로 추구하는 것들을 무의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듯 관습적 지혜에 대한 코헬렛의 비판은 신랄하다. 그에게 죽음은 움켜쥠의 공허함을 일깨워줄 뿐 아니라 관습적 지혜를 따라다니는 유령과 같은 것이고 삶의 방법을 가르쳐주는 참지혜의 스승과도 같다.
그러나 “구부러진 것은 곧게 할 수 없고, 없는 것은 셀 수 없다”(전도서 1:15)는 코헬렛의 주장은 창조주의 신비를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부재하신 것이 아니고 ‘틀에 가두려는’ 우리의 성향을 초월하는 존재일 뿐이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너는 가서 즐거이 음식을 먹고 기쁜 마음으로 포도주를 마셔라… 네가 어떤 일을 하든지 네 힘을 다해서 하라”(전도서 9:7-10)는 코헬렛의 말은 허무주의와는 거리가 먼 얘기로 다가옴을 알 수 있다. ‘바람을 쫓으며 오늘을 낭비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긍정적인 삶을 살 것을 종용하고 있다.
전도서가 일러주는 삶의 요지는 관습적 지혜에 따라 ‘보장된 대가’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네 힘을 다해서’ 오늘에 충실하며 살 것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욥기에서처럼 관습적 지혜를 뛰어넘는 파격적이고 대안적인 지혜를 제시해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지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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