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파에는 산소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인간의 생의 의미에는 희망이 있어야 한다. 희망을 빼앗겨버리면 생존의 무의미성과 무목적에 대한 느낌으로 정신적인 힘의 마비를 초래한다. 이 세상에서 가엾고 불쌍한 사람은 돈이나 학식이나 권세나 사업체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이요, 희망을 포기한 사람이다.
희망은 “신뢰와 확신의 감정”이라고 옥스퍼드 사전에서 정의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희망은 역경과 난관을 극복케 하는 신뢰와 확신의 힘을 가지고 있다. 희망에서 오는 새로운 사고와 계획이 위기를 딛고 일어서게 하며 승리하게 한다. ‘위대한 것을 향한 영혼의 확장’도 희망 속에서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오 헨리는 그의 걸작 ‘마지막 잎새’에서 희망의 힘에 대해 감동적으로 이야기해주고 있다. 장면은 뉴욕 시의 중심가인 워싱턴 광장에서 가까운 그리니치 빌리지의 이름 없는 화가들이 사는 곳이다. 주인공 잔시와 수우는 공동화실을 가지고 작업하고 있는 가난한 화가인데 어느 날 잔시는 폐병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되었다. 잔시는 누워서 자기방 건너편 벽의 담쟁이 잎이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자기도 죽을 것이라는 절망을 느꼈다.
그녀가 살 수 있는 가능성은 사실 50%였다. 그것도 그녀가 투병의 의욕을 가질 때에만 그랬다. 의사는 그녀에게 무엇엔가 흥미를 가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러자 잔시는 누워서 매일 떨어지는 담쟁이 잎새를 세는 것을 낙으로 삼기로 하였다. 그녀는 하나, 둘씩 떨어지는 잎새를 세면서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자기의 생명도 스러져갈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심한 북풍이 휘몰아치면서 잎새가 모두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수우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늙은 화가 버만은 잔시가 잠든 동안에 사다리와 그림 도구를 가지고 벽에 올라가 담 위에 잎새 하나를 그렸다. 그 다음날 아침 잠을 깬 잔시는 간밤에 휘몰아친 무서운 비바람 속에서도 여전히 돌담에 붙어 있는 잎새, 그 마지막 잎새를 보고는 삶의 용기를 얻어 희망을 갖기 시작한다.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지 않았으니 나도 아직 죽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다.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희망 속에서 참고 기다린다.
희망이 있다면 고독하고 괴로움을 당할지라도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우리의 불행을 치료하는 약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희망이다. 희망은 ‘기다리는 자의 꿈’이다. 희망이 있는 한 인간은 미래를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박석규/은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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