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 행로의 중간 지점에 왔을 때 나는 내가 어두운 숲의 한 가운데 있음을 발견했다.
바른 길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가장 위대한 서양 문학 작품의 하나로 꼽히는 단테의 ‘신곡’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 황량하고 무서운 숲의 모습은 돌이켜 생각만 해도 죽음보다 끔찍했다고 단테는 적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이런 지경에까지 떨어지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그 자신도 알지 못한다. 올바른 길에서 떨어져 나왔을 때 “너무나 졸음이 와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사이 어느덧 자신이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산 넘어 아침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어 암흑의 숲을 빠져 나오려는 그의 앞을 세 마리의 짐승이 막고 나선다. 표범과 사자, 암 늑대가 그것이다. 세 마리에 야수에 포위돼 사망 일보 직전에 이른 단테의 뒤에 버질의 그림자가 나타난다. 천국에 거주하는 베아트리체의 명을 받고 단테를 구원하기 위해 온 것이다. 그의 인도를 받아 지옥의 24 계단을 경험하고 연옥의 7층산을 거쳐 천국에 올라 신의 이미지를 본 체험담을 서사시의 형식을 빌어 써내려 간 것이 바로 ‘신곡’이다.
단테가 ‘인생의 중간’으로 본 35세 때 그는 생의 정점에 있었다. 명문 출신으로 당시 이탈리아 최고 도시 플로렌스의 시의원이었던 그는 부와 권력과 문인으로서의 명성을 한 손에 쥐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속해 있던 백 겔프 파가 흑 겔프 파에 밀려 권력을 잃자 그는 ‘다시 돌아오면 사형에 처한다’는 조건이 붙은 추방 명령을 받고 하루아침에 유랑자로 변한다. 단테는 그 후 “다른 사람이 주는 빵이 얼마나 짠가”를 절감하며 동가숙 서가식 하다 다시는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56세를 일기로 객사한다.
단테는 개인적으로 비참한 일생을 마쳤지만 그가 이런 시련을 겪지 않았더라면 인류가 이처럼 뛰어난 문학 작품을 얻을 수 있었을 지는 의문이다. 인간의 본성과 죄, 구원의 문제를 그토록 아름다운 음률에 실어 그처럼 깊이 있게 파헤친 글은 없기 때문이다. ‘신곡’ 전체는 빛나는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일례로 어둠의 숲 속에서 단테를 물어 죽이려던 세 마리 짐승 중 표범은 탐욕, 사자는 오만, 암 늑대는 사기의 상징이다. 단테는 이 중에서도 사기를 가장 질이 나쁜 것으로 봤다.
단테의 지옥은 가장 죄질이 가벼운 사람을 제일 위에, 가장 나쁜 사람을 맨 밑바닥에 놨다. 맨 위에 있는 것은 육체적 욕망을 이기지 못한 자들이고 제일 바닥에 놓인 것은 사기꾼과 배신자들이다. 단테가 사기꾼을 살인자보다 밑에 둔 것은 사기 행위는 신이 인간에게만 부여한 고귀한 지능을 악용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죄 중에 가장 사악한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그 동안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황우석 사태는 결국 황우석의 직접 지시에 따른 조작극으로 판명이 났다. 황우석은 난자 취득 경위에서부터 조작 의혹이 제기된 후 지금까지 끝끝내 발뺌을 하다 마지막 순간에야 실토하는 비겁함을 보였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엄청난 사태가 발생한 것일까.
죄로 빠져드는 초입은 단테가 경험한 것처럼 분명한 경계가 없다. “이쯤이야 괜찮겠지” 하는 사고가 지옥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처음에는 난자 취득 과정을 적당히 속이는 것에서 시작해 줄기 세포 2개를 11개로 둔갑시키고 나중에는 아예 없는 것도 있는 것으로 속이고 하는 식으로 발전해 갔을 것이다. 그러다 발각 나자 그 동안 쌓아온 허상에 발목이 잡혀 진실을 털어놓지 못했을 것이다.
한 때 지옥 일보 전까지 갔던 단테는 스스로의 죄를 참회한 후 연옥 7층산의 고행을 거쳐 구원의 길로 들어선다. 거짓말을 하고도 태연자약한 모습을 보인 것이 한국에서 황우석 하나 만일까. 이번 사태를 황우석 개인은 물론 한국 사회 전체의 사기와 거짓말에 대한 인식을 바로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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