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여섯 살 무렵의 꼬마 시절, 세살 박이 여동생 손을 꼭 잡고, 두 살 된 남동생을 등에 업은 엄마 손에 이끌려 시내버스를 한 번인가 두 번 갈아타고 어디론가 향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유명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던 서울 시내 한복판 고궁이었다.
북적대는 사람들 사이로 우리 세 남매를 잃어버릴 세라 손을 꼭 잡고 전시장을 휘젓고 다니던 우리 어머니. 그 당시에야 전시회장을 나온 다음 아이스크림 사먹던 기억이 더 컸지만 훗날 내 머릿속엔 화가 이중섭과 피카소는 불멸의 이미지로 남게 되었다.
지금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고 나니 ‘그때 우리 어머니 대단하셨다’는 생각이 지워지질 않는다. 지금 하나 있는 25개월 된 아들도 어디 데리고 가려면 보통 성가신 일이 아닌데, 그 당시 어머니는 직접 운전을 하신 것도, 편리한 지하철이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불친절한 버스 기사의 눈치 보며 고만고만한 아이를 셋이나 데리고 다녔을 생각을 하니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은 그 대단함이 크나큰 고마움으로 아직도 가슴속 깊이 남아있다. 자식들에게 특별한 무언가를 해주고 싶으셨던 엄마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져서다. 엄마가 베풀어주신 사랑의 힘 때문일까. 미술보다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나지만 천재화가 이중섭의 아내가 일본인이라는 것, 부인과 떨어져 지내면서 애틋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 피우던 담배 갑 안의 종이에 그림을 그려 마음을 전했다는 사실 정도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할 정도다.
자라면서 수많은 크리스마스와 생일을 지내며 어머니로부터 다양한 선물을 많이 받았지만, 내 머릿속에 가장 특별한 선물이라면 그 당시 유행하던 비싼 브랜드의 청바지도, 대학 입학 선물로 받았던 금목걸이도 아닌 어린 시절의 전시회 구경이 단연 최고로 꼽힌다.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 선물 바람이 한바탕 불고 지나갔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아이에게 무슨 선물을 할까 고심하는 나에게 그 옛날 엄마로부터 받은 최고의 선물은 엄마가 된 지금 내 아이에게 줄 선물을 고를 때마다 자연스런 기준이 돼버렸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너무 순진한 걸까? 요즘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한쪽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다. 강남의 일부 초등학생 사이에서 명품 학용품이 유행인데, 특히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인 구치(Gucci) 지우개가 인기라고 한다. 자그마치 14만원, 그러니까 미화로 140~150달러정도 하는 구치 지우개는 일반 지우개와 비슷한 크기의 흰색 지우개에 구치 로고가 새겨져 있으며 지우개를 넣을 수 있는 검정 색 가죽 케이스가 함께 있다고 한다. 강남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한 반에 4-5명 꼴로 이 지우개를 사용하고 있어 이를 갖지 못한 아이들이 부모를 조른다고 한다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값비싼 물건이 아닌 ‘특별함을 남겨줄 수 있는 그 무엇’을 기준으로 우리 아들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른 내 자신이 아이들의 현실을 너무 모르는 구식 엄마가 된 것 같아 갑자기 마음 한쪽이 씁쓸해진다.
성민정
<특집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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