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력을 누린 사람은 누굴까? 국무총리와 국방부장관을 겸임하고 이후 두 대통령의 장인이 된 사람이 있다면?
한명회. 그는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하고 세조로 즉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이를 통해 영의정에서 병조판서까지 오른 후, 예종과 성종의 장인까지 되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린다. 그가 누린 권력만큼이나 잔인함 또한 역사적으로 특기할 만한데 계유정난 때 한명회는 그의 정적들뿐 아니라 자신의 세력에 합류하지 않는 중도파 대신들까지 모두 죽이고 그들의 아비와 16세 이상의 아들들을 모두 교수형에 처하고 15세 이하의 아들들과 처, 첩, 딸들은 관노나 노비로 만들어 완전히 멸족시켜 버린다.
그런데 이러한 한명회에 얽힌 이야기들 중 더욱 놀랄 만한 것이 있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한명회를 상대로 성종 즉위 때에만 107건의 탄핵 상소가 올라왔다는 것이다. 당시 한명회의 탄핵 상소를 올린다는 것은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의 목숨까지도 건 무모한 짓임을 그들도 모르는 바 아니었을 것이다. 이는 언로가 막히면 나라가 망한다는 유교사상에 기반한 조선 지식인들의 기백이다. 조선 지식인들의 목숨을 건 상소는 비단 한명회 때뿐만이 아니라 조선 500년 역사 동안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05년 12월 대한민국 정권은 ‘참여정부’를 표방하고 인터넷 보급률은 세계 최고다. 아무나 대통령에게 의견을 말하고 대통령은 거기에 답글을 단다. 밖에서 튀는 행동을 했다가는 핸드폰으로 찍힌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 망신을 당하기 일쑤다. 불과 얼마 전만해도 몇안되는 엘리트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던 여론은 이제 많은 사람들에 의해 조성되고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쉽고 적극적인 방법으로 행동에 옮겨진다. 누구든 이 강력해진 여론을 무시했다가는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다양성보다는 획일성을 좋아하는 대한민국의 국민성도 이런 분위기 조장에 한몫 했다. 한 시민은 지하철에서 본인 애완견의 분비물을 치우라는 노인에게 싫다고 했다가 휴대폰으로 찍힌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 사회에서 매장 당했다.
이제 시민들은 사회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참견하며 마음에 들지 않는 자는 쉽게 매장한다. 최고의 힘은 이들에게 있다. 그리고 모두들 이들이 가진 힘에 비위를 맞추는데 여념이 없다. 대한민국은 포퓰리즘에 젖었다. 정치뿐만 아니라 언론까지도.
대한민국이 황우석 박사 사건으로 떠들썩하다. 온 국민이 황 박사 사건에 대해서 실망하고 한숨 쉬고 있다. 이번 일련의 사건에서 언론의 역할은 참으로 지대했다. 황우석 신화 만들기에 여념이 없던 언론들은 한 용감한 PD의 폭로에 폭격을 쏟아 붓더니 이제는 다시 질세라 황우석 깎아 내리기에 정신이 없다.
단편적인 정보를 접한 기자가 생물학 박사들도 같은 분야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렵다는 최첨단 과학을 논한다. 황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가 거짓이라는 것이 그들에게는 마치 독자의 흥미를 자극할 새로운 기사거리를 제공해 주는 반가운 일인 것처럼 보인다.
난치병 환자들을 치료하고 삼성전자 이상으로 한국 경제에 기여할 것이라던 줄기세포 연구가 거짓임이 판명 났는데 말이다. 어서 빨리 사건을 정리하고 한국이 다시 줄기세포 연구의 중심국가로 일어설 수 있도록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언론은 그저 국민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만 쏟아내고 있다. 힘을 가진 국민이 듣고 싶어하지 않는 이야기를 했다가 멸족을 당할까 두려운가? 언론은 국민이 소일할 흥밋거리를 전달하는 오락물로 전락하지는 않았는지? 이번 사건 최악의 가해자는 언론이다.
언로가 막히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 한국 언론은 목숨을 걸고 직언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조선 선비들의 기백이 아쉽다.
김영무
월드 뱅크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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