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후배 중에 장난꾸러기 아들을 둔 아빠가 있다. 지금은 중학생인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그 후배는 수도 없이 학교를 들락거려야 했다. 아이가 산만해서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옆의 아이들을 건드리고, 장난을 걸고, 수업 중에 잡담을 하곤 해서, 아들의 담임 선생으로부터 수시로 호출을 받았다.
반면 아들보다 2살 아래인 딸은 타고난 모범생이다. 학부모·교사 컨퍼런스 등 학교 행사에 가면 선생들마다 칭찬이 자자하다.
“학교에 가면 헷갈려요. 아들의 담임선생 앞에서는 죄인처럼 기가 죽어 있다가 딸 반에 가서는 온갖 칭찬을 들으며 일등 부모 대접을 받으니, 완전히 하늘과 땅이지요”
같은 부모로부터 같은 유전자 물려받고, 같은 환경에서 자라는데 아들과 딸이 어떻게 이렇게 다를까 라는 의문은 이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모임에서건 ‘자녀’가 화제로 오르면 딸 자랑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다가 아들 이야기만 나오면 한숨부터 내쉬는 사람들은 자주 본 다. 예를 들면 이렇다. 고교생 남매를 둔 여성이다.
“다음날 시험이면 딸은 으레 새벽 한두 시까지 꼼짝 않고 공부를 해요. 수학시험이 있을 때면 예상 문제를 푼 연습장이 휴지통으로 하나 가득이지요. 아들은 세상없어도 11시면 침대로 가요. 책 한번 후루루 넘기면 그게 공부 끝이에요. 성적이 어떻게 나올지는 안 봐도 뻔하지요”
프로젝트가 있으면 딸은 도서관, 인터넷 다 뒤지며 최대한 잘 하려고 노력하고, 과목마다 숙제 이상의 추가 과제를 더 해서 엑스트라 크레딧을 받는데, 아들은 학교 갔다 오면 피곤하다고 낮잠부터 자고, 자고 나면 머리 식힌다고 TV 보고, 숙제 하나 싶으면 하는 둥 마는 둥 어느새 끝났고, 신나게 뭘 하나보다 싶으면 컴퓨터 게임이고 … 집집마다 대개 비슷한 상황이다.
“딸은 걱정 없는데, 아들 녀석이 …”라는 말로 함축되는 ‘기대에 못 미치는 아들’은 이제 개인사를 넘어 전국적인 이슈가 되었다. 이번 주 뉴스위크가 ‘말썽 많은 남자아이들’을 커버스토리로 다루었다.
뉴스위크의 지적은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에게 뒤지는 것이 이제 인종과 연령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우선 초등학교 때는 학습장애 진단을 받는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의 2배가 된다. 고등학교에 가면 학력고사 평균 성적이 늘 여학생들이 높고, 대학교로 올라가면 전체 재학생 중 남자는 44% 뿐이다. 이렇게 계속 뒤쳐지는 남자아이들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장차 이 사회가 심각한 어려움에 빠질 것이라고 뉴스위크는 진단한다.
교육계가 남학생들에게 좀 더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지적은 몇 년 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30년간 여권운동의 여파로 미국의 교육정책은 여학생들의 자긍심과 실력을 향상시키는 데 비중을 두었다. 결과는 지금 보듯이 성공적이다. 그런데 스포트라이트가 여학생들에게로 쏟아지는 사이 남학생들에게 문제가 싹트고 있었는데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병이 깊어졌다는 것이다.
우리의 아들들이 왜 이런 처지가 되었을까. 우선 지적되는 것은 지난 30년간의 진보적 교육시스템이다. 남자아이들은 본래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움직이고, 충동적이고, 정돈이 안 되는 것이 특징. 그런데 학생들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자유로운 수업 분위기에서 이런 아이들은 길을 잃기가 쉽다는 것이다.
그 보다는 교사가 주입식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엄격하게 숙제 검사를 하고 공부 안하면 체벌을 가하는 전통적 교육법이 남자아이들에게는 더 적합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미 시험적으로 시행해서 성과를 보는 학교들도 있다.
교육 시스템은 한 두해 사이에 바뀔 일이 아니다. 그 전에 부모들이 우선 아들을 위해 실천할 일이 있다. 남자아이들은 천성적으로 여자아이들처럼 차분하게 앉아서 공부하도록 타고나지를 않았다. 아직 어릴 때 붙들어 앉혀두고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
권정희 논설위원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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