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계가 많이 근무하고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는 A씨는 요즘 새삼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며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대장금’을 비롯한 소위 한류 덕분이다. 중국인 동료들은 시간만 나면 한국 비디오 이야기로 화제의 꽃을 피우고 “이영애야말로 세계 최고 스타”라고 추켜세운다.
월마트나 서킷시티, 베스트바이 같은 대형 체인점에 가 봐도 미국까지 불어온 한류바람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대장금’ 같은 장편이 DVD 세트로 나와 고가에 팔리는가 하면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한국 영화가 흔히 눈에 띈다. 과거 아시아 영화 하면 우선 떠오르던 중국이나 일본 영화는 오히려 찾아보기 어렵다.
‘욘사마’ 하나가 가져온 경제 효과가 30억달러로 추산되고 있는 것을 보면 경제적 측면도 무시할 수 없지만 문화상품의 더 큰 이점은 우리 문화를 자연히 외국에 널리 알리고 ‘한국’이란 브랜드의 이미지를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하려면 질 높은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에 못지 않게 시장이 열려 있어야 한다. 온갖 나라가 빗장을 꼭꼭 걸어 잠그고 외국상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제 아무리 ‘대장금’ 할아버지 같은 작품을 내놔봐야 말짱 도루묵이다.
최근 일본과 중국 등지에서는 한류 열풍과 함께 ‘혐한류’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한국 문화를 비하하고 한국 문화의 상륙을 막으려는 이런 움직임은 자국 문화를 보호한다는 민족주의의 탈을 쓰고 있지만 떠오르는 한류에 대한 시기와 질투, 이로 인해 자기 밥그릇을 뺏길 것을 두려워하는 업자들의 이해관계가 뒤얽힌 것이리라.
한국 정부는 지난주 연 150일에 달하던 스크린 쿼타 일수를 절반으로 줄인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치가 다음 달 시작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과 직결돼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한국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자국 영화의 시장 점유율이 60%가 넘는 나라다. 지금까지 그 수혜자는 한국 영화산업 종사자였고 피해자는 국민들이었다. 정부의 규제에 묶여 자기가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 같이 한류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세상에서 제대로 된 정신을 가진 영화인이라면 “지금까지 영화산업을 보호해준 정부와 국민에게 감사한다. 한류의 세계화를 외치면서 국내시장을 꽁꽁 닫고 있는 것은 페어플레이 정신에 맞지 않는다. 앞으로는 더욱 훌륭한 작품으로 승부하겠다”고 말하는 게 당연할 것 같은데 현실은 정반대다. 한국 영화업계는 정부의 이번 조치를 “문화 쿠데타”로 규정하고 전면 반대투쟁에 나설 계획이라고 한다.
양국간의 자유무역은 항상 두 나라의 부를 증진시킨다. 자유무역은 경제적 효율화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북극에 있는 나라가 자국 바나나 산업을 보호하겠다고 무역장벽을 세우고 대정부 투쟁으로 날을 새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다. 얼음공장을 세워 열대지방에 있는 나라가 키운 바나나와 바꿔먹는 것이 순리이다.
전문가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될 경우 한국 GDP는 2%까지 늘어나고 한국은 110억달러, 미국은 90억달러의 무역증진 효과를 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 외에 제조업은 물론 그 동안 독점이익을 취해오던 의료, 법률, 교육 등 서비스 시장이 개방돼 소비자들은 보다 싼 가격으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게 된다. 이 협정 체결은 지난 수년간 삐꺽거려온 한미 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자유무역은 경제성장이란 측면 이외에 경제 자유의 확산이란 점에서도 중요하다. 모든 자유는 서로 연결돼 있고 자유는 그 자체만으로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인들은 데모에 앞장서기 전 경제에 관한 기초지식과 무엇이 국익인지에 대한 성찰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한국 정부가 빠른 시일내 성공적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마무리하기를 기원한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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