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의 기억이다. 당시 한국 다른 언론사의 기자로서 취재차 LA를 방문했다. 일행 중 한 명이 권총강도를 당했다. 새벽 두시 “괜찮거니”하는 생각에 호텔에서 두 블록쯤 떨어진 거리를 걸어가다가 생긴 사건이었다.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지만 윌셔가 한복판에서 들린 동료의 권총강도 소식은 기자한테는 LA의 강렬한 첫인상으로 남았다.
반년 뒤 지난 12월 이번에는 LA의 다운타운을 찾았다. 미주한국일보 특집1부로 소속을 옮긴 후 한 갤러리를 둘러보기 위함이었다. 이왕 간 김에 위층에 있는 작가의 작업실 겸 숙소에도 올라가 보기로 했다.
오래된 건물이었다. 엘리베이터부터 영화에서나 봄직한 수준이었다. 나무로 된 문을 위로 올리고 다시 철문을 한쪽으로 열고서야 엘리베이터에 탈 수 있었다. 버튼도 층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스위치를 조작, 자신이 원하는 층에 멈춰야 하는 식이어서 흥미가 더했다.
스튜디오는 과연 미술가의 작업실 다웠다. 술 마시다가 그렸다는 그림부터 쿠킹호일로 대충 만들어 벽에 장식한 거미 모형까지 독창적이고도 묘한 조화를 이뤘다.
하지만 그 곳의 백미는 바로 창 밖을 통해 본 광경이었다. 주변은 어둡고 음침했다. 어슴프레 보이는 옆 건물의 벽면에는 낙서들이 어지럽게 그려져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는 행인까지 말 그대로 슬럼가의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 뒤로 보이는 다운타운의 건물들은 찬란했다. 마치 한 편의 그림과도 같았다. 두 가지 풍경은 묘한 대비를 이루며 고독하면서도 자유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순간 간접적이나마 권총강도를 경험했던 기억이 눈앞에서 오버랩 되었다. LA의 또 다른 이면을 느꼈다. 사이렌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는 도시지만 바로 그 스튜디오가 그렇듯 숨어있는 수많은 예술가들의 내쉬는 정열적인 숨소리가 더 큰 도시가 바로 LA란 생각이 들었다.
지난 3일 뉴욕 예술의 중심 축 중 하나인 디아 아트 파운데이션에서 LA카운티 뮤지엄의 새로운 관장으로 지명된 마이클 고반은 “뛰어난 작가들이 LA에는 너무 많다. 그들은 소중한 자원이며 이런 환경에서 일하게 되어 큰 영광이라고 생각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LA는 문화의 도시다. 조금만 둘러보면 가 볼만한 공연·전시회가 많다는 것이 바로 LA지역에 사는 또 다른 축복이다. 꼭 돈이 드는 것만도 아니다. 자선 음악회와 전시회, 교회에서 열리는 행사들도 좋은 것들이 많다. 모든 독자들이 LA의 풍성한 문화를 음미할 그날을 기대해 본다.
박동준
<특집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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