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국에서 남한의 주도로 남북통일을 이룬 후 통일한국에 미군이 계속 주둔해야 한다는 문건이 공개되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미래의 한미동맹의 골격을 규정한 이 문건은 한국의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의 존속 필요성을 명시함으로써 미래에도 한미동맹관계가 양국의 공동 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문건이 만들어진 시점이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을 한 DJ정부 시절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DJ정부는 한편으로는 남북정상회담으로 물꼬를 트면서 한편으로는 한미관계의 존속을 긍정적으로 다루었다. DJ의 이같은 정책이 미국의 역풍을 피하기 위한 고도의 속임수 전략일 수도 있다. 그러면 한미동맹은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왜 필요한가. 한미관계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미국이 8.15 때 한국을 해방시켰고 6.25 때 한국을 구해준 혈맹관계를 강조하면서 미국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요즘 권력을 잡고 있는 세대에 이런 말은 통하지 않는다. 과거는 과거이고 미래는 미래이므로 과거의 연에 얽매여 미래를 망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도 참으로 맞는 말이다. 그러니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말하자면 과거의 은혜와 우호관계를 잊어서도 안되지만 그것보다도 한국과 미국의 미래를 위해 양국의 우호동맹관계가 필요하다.
앞으로 세계에서 어떤 나라가 새로운 패자가 될 것인지, 또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얼마동안 미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국제관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한국은 정치, 경제적으로 국제무대의 중심세력권에 있으므로 좋든 싫든 간에 미국과의 관계를 갖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북핵문제와 한반도의 안정, 남북 통일과정에서 미국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당장 경제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한미관계에서 보더라도 양국 관계가 나빠지면 이로울 것이 없다.
통일 후에는 이런 상황이 바뀌게 될까. 사정은 더욱 어려워지게 될 것이다. 지금 동북아에서는 중국의 세력이 급증하고 있어 앞으로 절대우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이미 정치, 경제적으로 중국에 예속되어 있는 상태이며 남한의 대 중국 경제 의존도도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통일될 경우 한반도 전체가 중국의 영향권에 포함될 우려가 매우 크다.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대륙이 분열 항쟁한 시대에는 한반도가 안정과 독립을 유지했다. 그러나 중국대륙이 통일되면 통일왕조는 한반도를 침략하거나 예속화하는 과정을 되풀이 해 왔다.
지금의 중국은 중국역사 5000년 사상 가장 큰 통일제국이다. 그 뿐 아니라 공산주의라는 유일사항으로 무장되어 있고 고도로 중앙집권화 되어 있다. 세계 최대의 인구와 초고속 경제성장을 배경삼아 세계의 패권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다. 동북아 주변국가인 한국은 장차 중국의 영향권에 휩쓸려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이 중국일변도에서 벗어나 주권과 영토를 온전하게 보전하기 위해서는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존재가 필요하다. 미국도 동북아의 교두보인 한국이 필요할 것이다. 한미동맹은 한국의 사활과 직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우리 재미한인들에게 한미 우호관계
와 동맹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만일 한미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악화된다면 미국사회에서 한인들이 백안시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인들 스스로 정체성 위기와 내적 갈등으로 큰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정권, 어떤 개인이라도 한미관계를 해치려는 사람은 재미한인의 공적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기영
뉴욕 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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