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한국에서 지낼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했었다. 특히 시내버스를 자주 이용했다. 마음이 심란하다 싶으면 가장 먼 곳으로 가는 버스를 택해서 종점까지 갔었다. 그래서 나는 직업이 안내양으로 착각할 만치 각 노선을 알았었다. 또 전철로 출퇴근을 한 탓에 경인선 정류장을 술술 왼다. 미국에 온 지 10년이 훨씬 넘게 지낸 지금도 지나다닌 정거장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광신자, 맹신자가 안 되는 나지만 이것만은 믿는다. 이 세상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곳으로 제한되어진 것이 아니고 죽은 후에 삶의 결과를 따져서 또 다른 장소에 놓인다는 것을…. 그러니까 우리는 어느 곳을 찾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정거장에 서 있는 거다. 내 기억 속에 저장되어진 수많은 정거장이 아닌, 지구라는 이름의 정거장 말이다. 지구는 많은 인종과 수많은 사람이 부대끼며 지내는 곳이다. 그러니까 넓게 지구를 뜻함보다는 그 나라를 말함으로써 그 사람의 정거장을 나타냄이 옳을 듯 싶다.
사람의 일생을 한 정거장인 것으로 표하자니 너무 삭막하다. 하루, 한 달, 한 해, 그리고 어떤 계기를 얻게 된 전환점으로 생각해보자. 교과서 적으로 삶을 생각하면 대화 중에 마찰이 많이 생긴다. 그러니까 인생은 문자로 쓰여진 대로가 아니라 체험으로 알아내야 한다는 것을 무수한 정거장을 스쳐오면서 깨달았다.
우리 인생에도 정거장이 있다고 생각하니 숨 차 오르던 가슴에 아늑함이 느껴졌다. 물론 시계나 달력은 사람이 스스로를 묶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마냥 불만스럽게 세상을 바라보는 나에게 변화가 일었다.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생각하는 온갖 것들을 긍정적인 안목으로 결론 짓게 된 것이다. 그래서 세상의 어두운 면보다는 가슴에 와 닿고 아름다운 것을 더 많이 느끼게 된 거다. 지금 내가 지내는 이 정거장은 마치 파라다이스처럼 황홀감이 느껴지는 유익한 장소인 것으로 말이다. 혹여 현재 지내는 정거장이 쓰레기가 쌓여있고 파리 따위가 가득한 곳으로 생각하지 말자. 세상만사 생각하기 나름이다. 다른 사람이 겪을 불쾌함을 내가 대신해준다고 생각하자.
범인인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의심은 가지만 일상생활을 누리면서 선인(仙人)의 경지에 듦도 근사하니까….
우리의 정거장을 생각하자니 추운 겨울에 버스를 기다리며 정거장에서 떨던 생각이 나고 오랜만에 도착한 버스를 타려고 수많은 사람들과 몸싸움하던 일이 향기로운 추억으로 떠오른다.
김부순 <버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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