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란 무엇인가. 하나의 영혼이 두개의 몸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라고 아리스토텔은 말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용구를 남겼다는 이 그리스의 철학자는 또 세상의 온갖 것을 다 가졌다해도 친구가 없다면 아무도 삶을 택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아름답고 감동적인 말이다. 그가 수많은 제자들과 당대의 지식층에서 받은 추앙과 존경을 고려한다면, 또 죽은 후 2300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군림하는 사상가로서의 그의 입지를 감안한다면, 친구와 우정에 관한 이 명언에 우리는 귀 기우릴 필요가 있다. 참으로 ‘친구’란 얼마나 가슴에 와 닿는 말인가. ‘우정’이란 얼마나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는 감정인가.
70년도 후반에 ‘줄리아’라는 한 영화가 대단한 인기를 끌었었다. 제인 폰다, 제이슨 로바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등외에도 주연한 출연 배우진들의 거창한 이름들, 아카데미 최우수영화상 후보라는 홍보 효과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영화속 이야기는 실화였고 주인공들이 미국 문단의 거장들이였다는 사실이 관객을 흥분케 했다. 릴리안 헬만은 한세대를 주름잡은 희곡작가였고, 그녀의 일생일대의 연인이었던 대셜 헤메트는 미스테리 장르에서 타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는 소설가였다.
그리고 그 영화의 타이틀인 줄리아는 릴리안 헬만의 유년시절부터의 친구였다. 이 두여자 친구 사이의 우정을 헬만이 회고한 것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었다. 헬만 여사는 회고록에서 줄리아에 대한 사랑을 위해서는 죽음까지도 기꺼이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고 술회했다.
실제로 그녀는 줄리아를 돕기 위해 생명을 건 모험을 감행하기도 했다. 줄리아의 부탁으로 헬만여사는 나치 점령하의 삼엄한 독일 국경을 넘어, 지하운동 자금에 쓰여질 돈을 쑤셔넣은 모자를 쓰고 가서, 친구와 모자를 바꾸었다. 커피샵에서 모자를 바꾸는 동안의 참으로 짧은 해후였다. 그 위험한 일을 친구에게 부탁하면서 줄리아는 말했다. 네가 이 일을 거절해도 나는 이해하겠어, 네가 이일을 수행 해 준대도 나는 감사해 하지 않겠어.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이 보답의 전부 일뿐이야, 라고.
거절당해도 마음 상해하지 않고, 그런 엄청난 부탁을 하면서도 감사 하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그런 우정. 거절 할 수도 있는 일을 친구를 위해 목숨을 걸고 감행하는 그런 우정. 하나의 영혼이 두 몸 안에서 살고 있고, 친구 없이는 삶을 지속 할 이유가 없어지는 그런 우정. 아리스토텔이 그 옛날 친구와 우정에 관해 정의한 것을 헬만여사와 줄리아가 입증해 주었다.
더구나 물질문명 천국인 것 같은 20세기 미국에서 증명해 주었다. 헬만 여사는 젊은 시절 줄리아와의 우정 때문에 레스비안이라는 오해도 받은 적이 있었다고 회고록에서 암시했다. 두 친구가 각각 열풍같은 정사를 통해 남자와 관련되지 않았더라면 그런 소문은 신빙성을 얻었을지도 모를 일이였다.
영국의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은 가장 친했던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여 장장 17년에 걸쳐 추모의 시를 완성했다. 그는 우정이 우리에게 주는 환희와 죽음에 의한 결별에 대해 썼다. ‘사랑을 했다가 잃는 것은 전혀 사랑해 보지 않았던 것보다 낫다’라고. 실연한 연인들이 즐겨 쓰는 이 구절이 실은 동성간의 우정을 노래한 이 추모 시의 한 구절이다.
이런 친구, 이런 우정을 경험하고 싶은 것은 우리 모두의 소망이다. 친구를 속이고 우정을 팔아 세속의 부와 명성을 추구하기 쉬운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우정 타령은 사치스러운 주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친구 없는 세상을 상상 해보라. 그 삭막한 세상에서 즐기면서 살 수 있겠는가?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겠는가?
송정원 베벌리힐스 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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