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올리언즈=김영걸 특파원>모든 게 엉망이었다. 제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우선 눈에 들어 온 것은 무너진 담벼락과 여기저기 널려있는 쓰레기 더미들이다. 코너를 돌아서자 구형 포드 토러스가 전복돼 있다. 물론 유리창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채. 토러스 뒤로는 앞부분이 솟구쳐 올라온 가옥 한 채가 마치 파도타기를 하는 듯 형상으로 불안하게 방치된 모습이다.
한 불럭 아래로 걸어내려가 봤다. 구형 링컨 컨티넨탈 위에 일제차 한대가 올려져 있다. 물길에 떠다니다 얹혀진 것으로 보인다.
길을 지나던 타주 번호판 차량운전자가 침통한 표정으로 한마디 던진다. 믿을 수 없다.(It’s unbelievable) 옆에 동석한 여자는 아직도 이곳에서 시체가 나온다는 얘기가 사실인 것 같다고 거든다.
또다른 귀퉁이를 돌아서자 재정착을 시도하기 위해 주변을 정리하고 있는 한 가구가 보인다. 아무리 전후좌우를 둘러봐도 이 사람들이 유일하다.
지난해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루이지애나주의 유서깊은 도시 뉴올리언즈를 이렇게 처참하게 만들었다. 제9지역(9th Ward)의 제방이 무너지면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CNN 등 수많은 주류언론들이 밝혔듯이 카트리나는 단순히 자연재해만은 아니었다. 다분히 인재(人災)적인 측면이 강했다.
강풍과 해일을 동반한 물의 위력을 오판한 것이지요. 제방만 튼튼했다면 이같은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카트리나 재해 복구사업에 한국기업의 진출을 위한 세미나 참석차 뉴올리언즈를 찾은 민동석 휴스턴총영사가 재해현장에 동행한 기자에게 귀뜸해준다. 옆에 같이 걷던 ‘한인피해자 대책위원회의 이상호 위원장도 동의의 맞장구를 친다.
민총영사에 따르면 뉴올리언즈 동부지역을 관통하며 포차트레인 지역과 미시시피강을 연결하는 산업운하가 제9지역에서 제방이 무녀져 순식간에 운하물이 범람하는 바람에 인명과 재산상 피해가 컸다는 것. 넘친 물은 순식간에 지붕꼭대기까지 차 올라와 변변한 승용차조차 없는 가난한 흑인들의 밀집지역인 제9지역을 유린했다.
민총영사는 무너져 내린 제방이 고작 한뼘 두께의 콘크리트 방벽으로 이뤄진 데다 버팀목 역할을 해줘야 할 흙조차 뒤에서 받쳐주지 않아 어마어마한 해일과 강풍의 제물이 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허약한 제방도 그마저도 일체형이 아니라 콘크리트 패널을 서로 연결한 조립식으로 밝혀져 허리케인에 대한 미국 당국의 대비가 얼마나 허술했는지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뉴올리언즈 사람들은 그동안 이렇게 허약한 제방에 생명의 안전을 맡기도 있었던 것이죠. 피해 한인동포 돕기에 그동안 여념이 없었던 이상호 위원장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최근 주류언론의 보도는 부시 대통령이 제방 붕괴의 위험성에 대해 사전보고를 받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국정 최고책임자의 이같은 책임 논란에 앞서 연방재난관리청(FEMA)의 업무 효율성과 대처능력은 지난해 연신 도마위에 올랐다.
제방이 무너진 날 밤 수많은 미국 시민들이 희생되고 있는 상황에서 브라운 전 재난관리청장은 여비서와 한가하게 ‘넥타이 패션’ 대화를 나눠 미국민들을 경악케 했다.
끈끈한 미국 남부 재즈문화와 마디그라의 낭만이 넘실대던 뉴올리언즈는 지금은 온데 간데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폭격맞은 제3 세계 국가의 한 도시나 다름없었다. 이곳이 과연 미국이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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