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어둠이 모두 가시지 않았지만 밝은 곳을 바라보기 시작한 수잔 문양에겐 공부를 통해 이룰 수 있다는 새로운 희망이 생겨났다.
한미가정상담소 대안고교 ‘호프 커뮤니티 스쿨’
재학 수잔 문양의 고백 <상>
아버지의 폭력 견딜 수 없어
‘흔들리는’ 이민가정의 가장 큰 피해자는 공부하고 꿈을 키워나가야 할 자녀들이다. 불안한 가정 환경에 체류신분과 경제적 고통이란 문제까지 겹치게 되면 그 불똥이 자녀들에게 튀어 학업을 중단하고 희망마저 접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 2004년 미국에 온 수잔 문(19·가든그로브·사진)양의 경우가 그렇다. 학업을 계속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가정폭력이 겹쳐져 지난 2년을 불안과 절망으로 살아왔던 문양은 최근 한미가정상담소(소장 김선영)의 대안 고등학교 프로그램 ‘호프 커뮤니티 스쿨’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찾았다. 지난 2년간 문양이 거쳐온 ‘여정’을 2회에 걸쳐 시리즈로 소개한다.
한국에서 고 3학년을 다닌 문양이 여동생과 함께 미국에 발을 디딘 것은 2004년 9월. 아버지의 친지 집이 있는 달라스로 온 그녀는 체류신분 문제로 마땅한 학교를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치과기공 기술자가 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샌호제에 있는 치과기공 학교에 입학을 시도했지만 학생비자를 받을 수 없었고 정상적인 고교 재입학이 점차 어려워지면서 희망은 실망과 절망으로 바뀌어 갔다.
결국 그녀는 샌호제 한 고등학교에서 3개월 재학한 것을 제외하곤 가든그로브로 오기까지 제대로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이후 그녀의 부모가 지난해 9월 미국에 오면서 가족들은 다시 한자리에 모였지만, ‘일단 들어가 보자’는 식으로 시작된 미국생활과 상습적이었던 아버지의 가정폭력이 이어지면서 상황은 한국에서보다도 악화됐다.
그녀는 “아버지는 한번 말하고 나서는 주먹이 먼저 날아왔었다”면서 “한국에서는 또래 친구들을 만나 방황하며 해소도 했지만 이 곳에서는 생활과 미래가 너무 막막해 집은 피난처가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시도해 본 사립고등학교 입학도 불가능한 것으로 결정되면서 그녀는 “차라리 일이라도 해서 돈이라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시민권자 꼬셔서 결혼해라” “위장결혼도 괜찮다”는 주위의 말이 남의 일 같이 않았다.
친구들을 만날 때도 학교 이야기만 나오면 꿀 먹은 벙어리일 수밖에 없던 그녀는 위축되는 마음에 왜 미국에 왔는지 후회가 컸지만 학교를 다닐 방법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 반복되는 아버지의 손찌검은 한국에서처럼 어머니와 딸에게 계속됐고, 문양의 아파트에서는 매일 비명과 고성이 터져 나왔다.
<배형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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