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틸로프 밸리 이달말 절정
산과 들을 울긋불긋 화려한 모자이크로 수놓는 야생화의 물결이 올해도 어김없이 남가주를 찾아왔다. 잡초들을 비집고 들판 가득히 피어나는 봄의 전령사들은 이제 흐렸던 마음을 털어 내고 어릴 적 고향의 봄을 반추해 보라고 손짓한다. 지난겨울 가뭄으로 올해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으로 우려됐던 앤틸로프 밸리의 파피가 우기 막바지에 강우량이 갑자기 높아지면서 뒤늦게 지난주부터 꽃봉오리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사막지역인 조슈아 트리와 앤자 보레고, 샌타모니카 산맥 등 남가주 유명 야생화 지역도 예년보다 3~4주 늦게 야생화가 개화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매년 방문하는 곳이지만 앤틸로프 밸리만큼 맘을 설레게 하는 구경거리는 찾기 힘들다. 오색 찬란한 융단을 펼쳐 놓은 듯 화려하게 피어난 주홍색의 향연을 보고 있으면 추운 겨울 날씨처럼의 잔뜩 위축됐던 마음이 어느 순간 활짝 열린다. 산들바람에 꽃향기가 그윽이 날리는 화사한 봄날이면 앤틸로프 밸리로 세계 곳곳에서 캘리포니아 주꽃이자 봄을 상징하는 명물인 파피를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따사로운 봄 햇살 아래 산야에 펼쳐진 형형색색의 꽃밭에서 봄나들이를 즐기기 위해 앤틸로프 밸리로 운전대를 돌렸다.
난 몇 주간 계속됐던 봄비가 잠깐 그친 뜸을 따 방문한 앤틸로프 밸리의 파피 보호지역(Antelope Valley Poppy Reserve)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으로 방문객들을 맞고 있었다. 지난해 사상 최고의 컨디션을 기록했기 때문에 실망은 더욱 컸다. 지평선까지 이어졌던 파피의 융단은 고사하고 이맘때면 흔히 들판을 개나리 빛으로 치장하던 유채화의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파피 보호지역으로 들어가는 랭캐스터시의 Ave. I 초입에서부터 우중충한 회색 필드만이 건조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가만히 차를 도로 옆에 세우고 필드를 관찰하면 분홍색의 파피들이 말라서 쓰러지고 있는 잡초들 사이로 한 두 송이씩 가지런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렇듯 숨어서 피어나는 파피는 주변의 황량한 배경과 대조되면서 언밸런스 하면서도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
앤틸로프 밸리의 경우 올해는 ‘두 번째 발아’(second germination)라고 불리는 상태에서 파피가 피어나고 있다. 파피는 강우량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겨울 우기가 가뭄이면 거의 꽃이 피지 않는다. 그런데 우기 막판인 3월말에 갑자기 비가 내리면 파피씨가 뒤늦게 발아되는 상황이 가끔 발생하는데 바로 올해가 그와 같은 경우다.
글 백두현 기자·사진 진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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