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람: 원로 사진작가 남궁 요설
▶ 50년대 서북미 미술학파의 몇 안 되는 현존 회원
4일부터 SAAM서 개인전…주류사회도 지대한 관심
그의 사진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한 편의 추상화를 보는 것 같다. 풍경을 찍은 사진이지만 작품 하나 하나가 그의 사진기 앞에서 포즈를 잡아준 듯 기이하다.
“찍는 사물의 본질을 찾아 그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는다”는 남궁 요설씨는 87세의 나이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며 그동안 만든 작품 중 21점을 모아 4일부터 시애틀 아시안 박물관(SAAM: 관장 유키코 시라하라)에서 작품 전시회를 연다.
사진을 시작하기 전 음악을 전공했던 그는 사진이 음악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흐름이 있고 하이 포인트가 있다. 그것을 끄집어내는 것이 자신의 일이란다.
남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워싱턴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연의 미를 사진에 담는다. 그의 사진 속 야끼마 강과 한라산은 그 모습을 알아 볼 수 없도록 잘린 체 그 안의 음악의 흐름을 타듯 움직임만이 남아있다. 마치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화가 마크 토베이의 현란한 손놀림으로 그림을 그린 듯하다.
남궁씨는 50년대 서북미 미술학파의 몇 안되는 생존 멤버 중 하나이다. 현대 미술에 새로운 장을 개척한 마크 토베이는 물론, 조지 츠타카와, 폴 호리우치 및 케네스 칼라한 등 쟁쟁한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그는 사진이란 장르를 현대 미술의 중요한 흐름으로 끌어올린 장본인이다.
그의 삶의 이야기는 그의 사진작품들만큼이나 역동적이다.
그는 1919년 광주에서 평양신학대 교수의 아들로 태어나 1936년 음악을 공부하러 일본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전 부인인 미네꼬 수마츠씨를 만나고 미네꼬 집안의 반대를 피해 상하이로 건너가 결혼했다. 그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한국인들의 반 일본정서를 피해 1947년 시애틀로 이민 왔다.
UW에서 부인과 함께 음악을 가르치다 가정형편상 노스웨스트 오리엔탈 항공사에 취직했고 그로 인해 음악공부를 못하게 되자 사진이라는 해방구를 찾았다.
그 후 1957년 친구가 준 500달러로 산 시나(Sinar) 4x5와 린호프(Linhof) 3각대를 몇 년 전까지 어깨에 둘러매고 워싱턴주 곳곳을 섭렵하며 사진을 찍어왔다. 지금은 무릎이 아파 서있기도 힘들다며 씁쓸하게 웃는다.
1999년 암을 앓던 부인과 사별한 후 한동안 활동을 중단했던 그는 현재 새로운 인생의 반려자 모니카 씨와 함께 한글을 배우며 다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맞아 정부 보조로 한국의 미를 찍기 위해 한국에 갔으나 정부의 안이한 자세로 이 부서에서 저 부서로 옮겨만 다니다 결국 몇 장의 사진만 찍은 채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 후 세 차례 더 한국을 방문한 그는 시애틀에서 만난 도예가 윤광조씨의 도움으로 한국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지금도 시애틀에 거주하고 있는 남궁씨는 뉴욕이나 시카고 등 큰 도시들보다는 자연과 사람이 어울려 사는 워싱턴주가 자신의 작품 세계에 더 어울린다고 말했다.
남궁씨와 그의 작품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시애틀 박물관이나 {{{{dick@cosgroveweb.com 을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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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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