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수의 능력을 재는 척도는 위기에서 얼마만큼 강한가 이다. 박찬호가 다저스에서 18승을 올리고도 외면당한데는 시즌의 사활이 달린 승부처에서 승리를 따내지 못하는, ‘빅타임 루저’로 낙인 찍혔기 때문이다. 기록은 결코 선수의 능력을 대변하지 않는다. 감독의 신임을 얻는 선수는 그러므로 위기에서 한 몫하는 투수, 결정적인 순간에 적시타를 때려주는 타자이다. 80년도 중반 다저스의 토니 라소다 감독은 NL 챔피온 쉽에서 세인트루이스의 슬러거 잭 클락의 능력을 시험하는 도박을 한적이 있었다. 한 게임만 이기면 월드시리즈행이 결판나는 순간에 9회말 클락에게 승부를 걸었다가 결승 홈런을 얻어맞고 월드시리즈행이 좌절된 바 있다. 당시 라소다 감독은 두고두고 팬들의 비난을 면치 못했고 이후 잭 클락은 홈런 킹으로서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세인트루이스의 간판 타자로 군림했다.
요사이 배리 본즈의 714호 홈런을 두고 말들이 많다. 본즈의 홈런파워 스테로이드 때문이라느니 아니라느니 설왕설래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그러나 기록은 선수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제아무리 행크 아론, 배리 본즈라 하드라도 팀에 영양가 없는 홈런만 때려내는 선수라면 홈런의 가치는 무가치 할 수 밖에 없다.
본즈는 자타공인 호타준족의 타자이다. 요사이 무릎부상으로 기동력이 저하됐지만 역사상 500홈런 – 500 도루를 기록한 선수는 본즈밖에 없다. 그러나 본즈의 홈런파워와 기동력은 본즈의 또다른 능력, 즉 적시타나 결승포를 때려내는 능력에 비한다면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본즈는 설마 할때 때려내는 괴력의 집중력의 갖춘 선수이다. 한시즌 73호 홈런은 그렇다하드라도 그 다음해에 기록한 49호 홈런중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역전포와 결승홈런이 들어 있었다. 본즈는 투수들의 엄청난 기피 투구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결승홈런을 양산해 낸 자타 공인 최대의 클러치 히터이다
본즈가 20일 드디어 714호 홈런을 터뜨리며 전설의 홈런왕 베비 루스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자이언츠의 형제구장인 오클랜드 콜로세움에서 2회초 선두 타자로 나서 비거리 122미터 짜리 솔로 아치를 그려 메이저리그 사상 3번째로 대망의 714호 홈런포 고지에 올랐다. 본즈의 홈런이 터지는 순간 야유를 보내던 A’s 팬들 조차 기립박수를 보내며 본즈의 기념비적인 홈런포에 열광했고, 경기는 약 90초동안 중단된 채 714호의 역사적인 순간을 기념했다. 약물 스캔들로 얼룩진 본즈의 어두운 면이 일순간 가려지는 순간이었다.
2001년 한시즌 최다 홈런인 73호 홈런을 터뜨려 인기 절정에 오른 본즈는 2004년 BALCO 스캔들이 터지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2004년에 터진 발코 스캔들은 본즈의 이미지를 옥죄는 데 충분했다. 발코로 인해 금지 약물의 힘을 빌려 홈런왕에 올랐다는 비난에 직면하게 된 본즈는 설상가상 지난 3월 `그림자 게임(Game of Shadows)’이라는 책이 발간되며, 원정 경기에서 안티 팬들의 집단 야유와 팬들이 던진 주사기, 치약 등의 투척 세례를 받으며 딱한 신세로 전락했다. 본즈는 아마도 루스의 홈런기록을 넘어서 아론의 홈런 기록까지 경신한다해도 홈런킹으로서 크게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스테로이드로 인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선수에 대한 평가는 결코 기록이 아니다. 스테로이드로 얼룩진 본즈의 홈런 기록 뒤에는 엄청난 집중력과 연습으로 일궈낸 천재 타자 본즈의 야누스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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