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너무 말을 빨리 하잖아” “네가 듣는 게 너무 느린거야”
한 대학의 이공계 대학원 수업에서 한국 유학생과 현지 학생이 주고 받은 대화다. 한국 유학생이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 외국인 교수를 면박주려는 현지 학생을 제지하려다 오히려 면박을 먹은 꼴이다.
미 전역을 휩쓸고 있는 반이민 열풍이 가장 진보적이어야 할 대학에마저 야금야금 손길을 뻗치고 있다. 미네소타주 하원의원은 2월 영어 발음이 명확하지 않은 유학생 조교들이 현지 학생들의 학업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HF2798법안(일명 Clear English Pronunciation)을 상정, 영어 발음이 미숙한 유학생들의 TA직 박탈을 추진하고 있다. 미네소타주가 지난 해 유사한 법안을 통과시킨 노스다코다주의 행보를 똑같이 밟고 있는 것이다.
캠퍼스내에서 외국인 유학생 조교들과 현지 학부 학생 사이의 ‘언어 소통’을 매개로 한 갈등과 긴장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외국인 유학생 조교들의 말을 “못 알아 듣겠다”는 불만이 현지 학부 학생사이에서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유학생 조교들의 학업 능력 앞에서, 또한 학교로부터 조교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그 같은 불만을 그동안 무마시켜왔다.
그러나 영어 구사 능력을 둘러싼 이들의 갈등은 최근 표면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뉴욕 SUN버팔로 학생회 집행부가 유학생 조교들과 현지 학부생의 의사소통 폭을 넓히는 것을 최대 과제로 천명했다. 일부 대학의 블로그와 게시판에는 외국인 유학생 조교와 의사소통 불만을 호소하는 학부모들의 글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교육권을 전면에 내세운 현지 학생들의 주장은 이민자들의 언어로부터 영어를 지켜내야 한다는 미 정가의 움직임과 맞물리며 탄력을 받고 있다. “국어로 영어를 채택해야 한다”는 주장은 소수계 언어의 침투를 미국의 정체성에 대한 훼손으로 받아들이는 보수파 의원들의 속내를 반영하고 있다. 민족개념이 없는 미국에서 국가를 지탱해주는 힘은 언어뿐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과학에는 국경이 없다’는 국적을 초월한 학문의 자유는 미국의 국가주의 앞에서 무력해지고 있다. 언어대신 기호로서 학문적 우수성을 뽐낼 수 있었던 이공계에마저 언어의 장벽이 높게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유학생들은 미국이 얄밉다. 어떨 때는 ‘두뇌 젖줄’로, 또 다른 때는 ‘캐시카우’역할을 담당한다며 유학생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하다가 휑하니 태도를 바꿔 일순간 유학생에 적대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반이민 정서에 비애를 느끼는 것은 비단 서류미비자만이 아니다.
이석호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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