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처음 미국에 와서 ‘참 유난스럽다’ 싶은 것이 포장 문화였다. 안에 든 물건보다 포장 값이 더 나가는 게 아닌가 싶게 요란스런 포장들을 한다. 반면 미국사람들의 선물이라는 게 대개 간소해서 포장의 화려함으로 지레 짐작하다가는 정작 그 안에 든 물건을 보고 실망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런데 포장 좋아하는 미국에서도 절대 포장을 안 하는 경우가 있다. 하늘색 상자에 윤기 도는 하얀 리본 - 티파니 제품일 때이다. 척 보면 ‘티파니’인 그 상자 보다 더 고급스런 포장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짜 티파니 제품을 만들어 팔던 한인들이 또 경찰에 체포되었다. 지난 주 LA 경찰국은 다운타운 상가를 상대로 가짜 유명 브랜드 제품 대대적 단속에 들어갔는데 검거된 위조 용의자들 중 한인들이 또 예외 없이 포함돼 있었다. 다운타운 상가에 온갖 유명 브랜드의 ‘짝퉁’이 널려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고, 그들 짝퉁 제조나 판매에 코리안이 단골로 끼여있다는 사실 또한 누구나 아는 일이다.
짝퉁과 코리안의 인연은 끈끈하다. 유명 브랜드, 소위 ‘명품’ 좋아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게 한국사람들이고, 손재주 뛰어나서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한국사람들이고 보면 둘은 찰떡 궁합이다. 프라다 까만 천 가방이나 루이 뷔통의 스피디 같은 가방은 시장 아줌마, 지하철의 학생, 경로당 할머니 할 것 없이 누구나 다 들고 있어서 진짜를 든 사람이 무색해질 정도이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도 한국에 가면 즐기는 코스 중 하나가 짝퉁 샤핑이다. 특히 20~30대 젊은 여성들은 이태원을 누비며 평소에는 만져 볼 수도 없던 샤넬, 루이 뷔통, 구치 등을 사들인다. 최근 한국에 다녀온 한 여성은 전에 못 보던 새로운 짝퉁을 또 발견했다고 알려줬다.
“가짜를 만들다만들다 이제는 가짜 샤핑 백까지 만들더군요. 가짜 샤넬 핸드백이 아니라 샤넬의 샤핑 백을 위조해 파는 거예요”
가짜 샤핑 백의 용도는 샤넬 혹은 루이 뷔통 매장에서 방금 샤핑하고 나온 듯한 모습을 연출하는 것. 그 자리에 있던 우리 모두는 “해도 너무하다”며 한바탕 웃었다.
우리가 구치나 에르메스 등 천 달러 단위 핸드백을 바라보며 ‘갖고 싶다’고 느낄 때 우리가 갖고 싶은 건 무엇일까. 핸드백은 이미 여러 개 있으니 소지품을 담고 다닐 가방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갖고 싶은 건 ‘브랜드’, 브랜드가 몰아다 주는 후광효과이다.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그가 걸치고, 신은 것이 ‘명품’이면 대번에 그의 위상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여 보게 되는 문화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재력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물질만능주의가 그 배경이다.
사람은 욕구의 존재이다. 끊임없이 뭔가를 얻고 싶어한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생리적 욕구. 배 고프면 먹고 싶고, 목마르면 물을 마시고 싶은 욕구들이 자연스럽게 발동되어서 생명은 유지된다.
생리적 욕구가 채워지고 나면 찾아드는 것이 사회적 욕구이다. 혼자는 외로워서 다른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싶은 친화 욕구, 뭔가 목표를 정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성취하고 싶은 달성 욕구, 그리고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승인 욕구 등이다.
‘명품’을 갖고 싶은 욕구는 일종의 승인 욕구이다. 값비싼 것을 소유함으로써 재력을 과시하며 돋보이고 싶은 욕구이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는 가지 말라고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까마귀들 속에서 백로로 튀고 싶은 욕구가 우리에게는 잠재해 있다. 부유층이 값비싸고 희소성 있는 상품일수록 선호하며 남들과 차별화 하려 드는 현상을 ‘백로효과’라고 부른다. 짝퉁 구매는 싼값에 ‘백로’를 흉내내고 싶은 모방소비인 셈이다.
명품 좋아하고, 짝퉁 범람하는 풍조는 이제 전 세계적이다. 진짜‘백로’, 가짜‘백로’가 하도 많아서 이제 진짜 부자들은 명품을 찾지 않는 것이 한 추세라고 한다.
명품은 일종의 포장이다. 별 것 아닌 선물에 요란스런 포장 - 사람도 그럴 수가 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