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광복절을 맞을 때마다 일제의 잔악한 총칼 앞에서 나라와 겨레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의 발자취를 더듬어본다. 조선민족의 저력을 세계에 입증한 위대한 선열들이다. 특히 이 날이면 나는 어머님이 남긴 한마디 “만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이 생생하게 귓전을 울린다. 나의 모친 이신애는 건국 공로훈장을 추서 받은 독립 운동가였다.
어머님은 평북 구성 출생으로 개성 호수돈 여숙 및 원산 성경학교를 졸업하고 원산 루시 여학교 두남리 분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다가 상경, 1919년 서울에서 3.1 독립선언 시위운동에 참가했다. 아울러 혈성 부인회 통신부장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자금 모금운동에 헌신했고, 그해 6월에는 비밀결사인 대동단에도 가담했다. 대동단 일원으로 부인 단부를 조직했고 왜정기관 파괴를 위한 비밀탐정으로 활약했다.
이어 단장 전협의 지시로 의친왕의 상해 탈출을 알선하였는데 비밀임무를 수행중 신의주에서 사전 발각되어 서울로 피신했다. 일행이 서울에 도착한 후 대동단 29개 단부에서 80여명이 경찰에 검거되었고 전협 단장은 옥중에서 사망했다.
모친 이신애는 남은 단원 5명과 피비린내를 풍기는 가운데 제2 독립선언 사건에 가담, 그것이 바로 유림의 김가진 선생을 총수로 한 대동단 사건이었다.
이신애는 그 후 안국동 네거리에서 흰 두루마기에 남바위를 쓰고, 가슴에서 태극기를 꺼내어 만세를 불렀다. 바로 옆에는 ‘왜경의 파출소‘가 있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피를 토하듯 외치는 만세소리에 진을 치고 있던 왜경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그의 머리채를 낚아채더니 긴 머리를 말꼬리에 묶어 종로 경찰서까지 질질 끌고 갔다고 한다. 그 광경은 파고다 공원 벽화에 그림으로 담겨있다.
그 후 이신애는 종로경찰서 미즈와 형사로부터 모진 고문을 받고 서대문 형무소로 이송됐다. 감옥에서 유관순과 만나 만세운동을 벌였고 두 사람은 주모자로 몰려 파김치가 되도록 맞았다. 당시 이신애는 유방을 잘리고 유관순은 17세의 어린 소녀로 1920년 10월12일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고 옥중 최후를 지켜본 이신애는 증언했다.
재판에서 이신애는 대동단 사건으로 3년, 다시 옥중만세로 2년을 합해서 5년형을 살다가 1924년 4년만에 가출옥했다. ‘한을 못 푼 비운의 애국지사’ 이신애는 그 때 당한 고문으로 가슴에 응어리를 간직한 채 병상에서 생을 마쳤다.
광복절을 맞아 독립투사의 자녀로서 한마디 하고자 한다. 지난 2일자 한국일보에 실린 광복절기념행사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한국정부가 친일인사를 분류한 가운데 친일파로 단정된 황신덕 여사 관련 기사였다. 그는 독립운동가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하나 그대로 넘어갈 수는 없다고 본다.
황신덕 여사는 중앙여고를 세운 분이며 문맹퇴치에 앞장서고 교육에 기여한 부분은 좋게 평가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1943년에 제자를 정신대(당시 위안부)에 보냈다는 것은 천인공로할 일이다. 여자를 정신대로 보내는 것은 남자를 징용 보내는 것보다 몇 배 더 끔찍한 일이다. 당신의 딸이라면 정신대에 보냈겠는가 묻고 싶다.
그의 친일 전력을 덮는 것은 생명을 내어놓고 독립 운동한 투사들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그 분들의 고결한 뜻에 먹칠을 하는 것을 나는 용서할 수 없다.
1943년 한 여학생과 선생들과 함께 찍은 한 장의 사진이 ‘중앙여고 30년사’에 실려 있다. 황신덕 여사가 악랄한 일본의 총칼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제자를 정신대로 보냈다며 동정하는 의견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 과거의 ‘친일’을 너무 파헤치지 말고 이제는 덮자는 의견들이 있지만 나는 동의할 수가 없다.
그들에게 정신대의 생생한 고통의 역사를 다시 한번 알아보고 교훈으로 삼으라고 권하고 싶다. 위안부로 끌려가던 당시 검은머리가 이제 파뿌리가 된 할머니들이 일본에 와서 재판을 받고 실망하고 돌아가는 것을 나는 일본에서 모 신문사를 운영하면서 수십년을 두고 보았다. 끝으로 친일의 후예들은 역사의 앞에 나서지 말고 조용히 자숙했으면 한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