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기내 안내방송을 들으며 내심 긴장이 됐다. 12년만에 찾는 한국이다.
미국 온 지 몇 해 되지 않아 한 번 갔을 때도 집을 못 찾아 헤맸었는데... 복잡하지 않은 지방 도시이고, 어릴 때부터 계속 살았던 집인데도 택시를 탄 채 그냥 지나쳐버렸었다.
시내 가까이 있는 집이라 동네 다리만 찾으면 된다 생각했는데 가다보니 동네에서 한참 지난 다리를 지나고 있었다. 알고 보니 개천을 복개해 못 알아봤던 것이다. 겨우 다리를 찾긴 찾았는데 이번엔 근처 길을 알아 볼 수 가 없어 당황스러웠다. 10년만에 변한다는 강산이 3년만에 확 변해버린 것이었다.
몇 년만인 방문에도 그렇게 헤맸었는데 10년이 훨씬 넘어버린 지금은 어떨까... 한 마디로 시절이 수상할 때 농담 삼아 놀리던 소위 ‘간첩’도 못되는 상황일 것이다. 혼자 속으로 다짐했다. “그래, 내가 살던 곳이 아니라 가끔 다녀가 본 어떤 나라에 잠시 다니러왔다고 생각하자”
하지만 나의 긴장이 풀어지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몇 년 전 텍사스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처음 이사올 때 느꼈었던 기분이 다시 살아났다.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쉽게 들려오는 말을 쓰며 나랑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내 주위를 전부 둘러싸고 있다는게 얼마나 신기한지... 어느새 긴장이 녹고 편안한 마음상태가 되었다.
도착한 다음 날 저녁 미사리 라이브 카페를 찾았을 때도 한국에서 떠나있던 세월 때문에 전혀 알지 못하는 가수들, 그리고 그들의 노래가 전혀 낯설지가 않았고, 오히려 흥겹기까지 했다. 지난번 미국 독립기념일에 할리웃 보울을 찾았을 때 문득 “한국이라면, 또 한국가수가 노래를 부르는 것이라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났다.
뿐만 아니다. 그동안 규모들이 커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아담한 많은 것들이 참으로 아늑하고 친근하게 다가왔다. 특히 도착한 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주변을 둘러보면 몸 사이즈가 큼직한 미국인들과는 달리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날씬하다는 사실을 아직도 즐기고 있다. 항상 뚱뚱하다는 자격지심을 지니셨던 엄마가 미국에선 당신이 얼마나 날씬한지 모르겠노라 즐거워하셨던 기억이 새롭게 다가왔다.
미국을 떠나기 전 가장 노심초사하며 준비한 것은 완전히 달라져있을 교통수단에 대한 정보였다. 미리 이메일로, 인터넷으로 교육을 받고 익히면서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골고루 다 이용해보기로 마음먹은 터였다. 마음이 편안해진 덕분인지 다행히 당초 우려했던 것보다는 쉽게 대중교통수단에 적응할 수 있었다. 시원하고 편안한 공항버스로 시작해 기분 좋고 친절한 택시를 이용해 공항에서 목적지까지 쉽게 도착했다.
일단 짐을 풀고 동네는 걸어서, 시내는 버스를 이용해 길을 익히겠노라며 길을 나섰는데 푹푹 찌는 더위 때문에 동네를 걸어보는 건 포기하고 마을버스와 시내버스를 시도했다. 정말 지독히도 막힌다. 시간, 구간이 별 상관없는 듯 싶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땅밑 수단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지하철은 정말 좋다. 나 같은 사람도 별 어려움 없이 목적지까지 빠르게 갈 수 있도록 해준다. 게다가 내가 다니는 코스를 기억해 버스로 바꿔탈 때 깎아주기까지 한다. 다만, 한 가지 땅 밑에서만 다니다보니 지리를 익힐 수 없는 단점은 있었다. 그래서 길을 익혀 운전을 직접 하고픈 야무진 소망은 당분간 포기해야 할 듯 싶다.
지금은 고속기차 (KTX) 속에서 김밥을 먹으며 여기저기서 풍기는 음식 냄새를 즐기고 있다. 향긋한 귤 향기, 어느새 그 향기를 덮어버리는 고릿고릿한 마른오징어 냄새, 고소한 도시락 반찬 냄새... 그 동안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그저 모든 게 항상 함께 해왔던 것처럼 친근하고 정겨울 뿐이다. 그래서 고향인가 보다.
김선윤 USC 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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