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는 뉴욕에 이은 미 제2의 도시다. 20세기가 ‘대서양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태평양의 시대’가 될 것이라며 LA가 뉴욕을 제치고 미 최대 도시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보는 전문가들도 많다.
19세기 후반까지 서부의 촌에 불과하던 LA가 이처럼 대도시로 도약하는데 큰공을 세운 사람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해리슨 그레이 오티스다. 남북전쟁에 북군 중령으로 참전했던 그는 대망의 꿈을 품고 LA로 와 1881년 12월4일 창간하자마자 파산했다 다시 문을 연 LA 데일리 타임스의 편집국장이 된다.
타임스를 재정적으로 안정시킨 그는 1884년 아예 신문사를 사버리고 이름도 타임스-미러사로 바꾼다. 그는 사주로서 신문의 편집과 오피니언 난에 직접 개입, LA를 발전시키는데 앞장섰다. 당시 황무지나 다름없던 샌퍼낸도 밸리 일대에 북가주 오웬스 밸리 물을 끌어와 중산층 주거지로 탈바꿈시킴으로써 LA시 인구와 면적을 대폭 늘리고 그 과정에서 부동산 투자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 이 스토리를 다룬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차이나타운’은 고전이다.
1910년 10월1일 타임스는 공장에서 폭발사건이 일어나 21명이 죽는 비극을 겪지만 오티스는 이것이 극렬 노조원의 소행임을 밝혀냄으로써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던 노조의 기세를 꺾고 신문사를 완전히 장악한다. 극우파였던 그는 자신과 호흡이 맞는 정치인은 일찍부터 발굴, 키워주고 반대파는 가차없이 깎아 내렸다. 타임스의 전성기 때 가주 주지사가 편집국장과 만나기 위해 신문사로 찾아와 오래 기다리는 것은 보통이었다.
한 때 이처럼 위세를 누렸던 LA타임스가 요즘 위기를 맞고 있다. LA 외곽을 커버하는 로컬 신문들과의 경쟁, 인터넷의 보급, 시카고에 본부를 둔 모회사 트리뷴과의 갈등 등 여러 원인이 있지만 부수는 나날이 줄어들고 경영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90년대 중반 100만부를 넘어섰던 판매부수는 이제 85만을 헤아리고 있으며 지난 한해 동안만 미 10대 신문 중 최고인 5.4%의 하락을 기록했다.
이처럼 경영이 악화되자 모회사인 트리뷴은 최근 편집인과 편집국장을 소환, 수십 명의 기자를 추가 감원할 것을 요구했으나 이들이 이에 반발하는 초유의 항명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940명의 기자 중 400명이 편집인과 편집국장을 지지하는 연판장에 사인하고 이들을 파면할 경우 거리로 달려나갈 기세여서 내홍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조짐이다.
미 전체 신문 중 4위, 대도시 신문으로는 뉴욕타임스에 이어 2위이고 2004년에는 퓰리처상을 5개나 받은(뉴욕타임스를 제외하고는 한해 최다) LA타임스의 위기는 미국 신문 전체의 위기이기도 하다. 누구나 마우스 한번 클릭해 무료로 거의 모든 신문을 볼 수 있는 시대에 종이 신문을 찍는 기업이 설자리를 잃고 있는 것이다. 과연 LA를 대표하는 언론 LA타임스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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