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에는 지금 오색단풍으로 물든 낙엽의 조화가 한 폭의 그림 같아 가을의 정취를 흠뻑 느끼게 한다. 단풍이 숨이 막힐 듯 황홀하기만 하다.
시간의 흐름은 유유히 흐르며 서서히 가을이 깊어간다.
낙엽이 다른 나무 위에 사뿐히 내려앉는 소리, 땅 위를 뒹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때론 계절이 주는 느낌으로 공연히 울적하고 쓸쓸한 기분도 든다.
그러나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기도 하다. 대자연은 어김없이 이 땅에 풍성한 수확을 안겨주고 조용히 흙빛으로 돌아가고 있다. 따라서 가을은 모든 것이 소멸하는 허무의 계절만이 아닌, 아름다움 계절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조화 속에 존재하는 자연은 위대한 창조주의 뜻임을 더욱 깨닫게 한다.
그래서 ‘계절에는 어김이 없다’는 순리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기도 한다.
속절없이 지는 낙엽만큼 우리에게 계절의 변화를 가슴 저리게 알려 주는 것도 없으리라. 낙엽을 바라보며 낙엽처럼 가벼운 인간의 운명을 생각한다. 낙엽을 밟으며 자연과의 한없는 대화에서 차츰 내 마음이 순화되고 가슴이 후련해질 때도 있다. 가을은 모든 이를 철학자로 만든다. 만추의 우수(憂愁)는 결코 실없는 감상이 아니라 그토록 무성하고 다채롭던 여름의 모습이 홀연히 흙으로 돌아가는 흔적을 보여준다.
창세기에는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라고 했다.
기쁨보다 고통의 세월이 그리움으로 느껴지는 절기다. 일심동체의 부부가 아무리 백년해로 한다 해도 떠날 때는 제각기 따로 떠난다.
하늘나라로 떠난 남편이 더 그립고 연민의 정이 느껴지는 것은 인생의 가을에 서서 관조(觀照)하기 때문일까. 죽음은 인간의 영혼이 소멸하는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가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인생은 짧고도 긴 것, 긴 인생 여로에 우리의 삶을 한번 되돌아본다. 회한도 많지만 그래도 보람 있던 삶이 아니었나!
삼여(三餘)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한평생을 살면서 하루 가운데서는 저녁이 여유로워야 하고 일년은 겨울이, 일생은 노년이 여유로워야 한다는 뜻이다.
이젠 나도 어느덧 이순(耳順)의 고갯마루에 다달았다. 자연의 순리에 귀 기울이며 사랑과 배품을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 늘 마음이 여유로워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다.
채수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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