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제와 균형 - 어떻게 들으면 상반된 개념으로 들릴지 몰라도 사실은 상호보완 관계에 있다. 견제가 너무 심하면 균형이 깨어진다. 완벽한 균형은 견제력을 상실시킨다. 미국 통치제도와 정치이념의 핵심이 바로 이 견제와 균형이다.
과거 12년 동안 미국은 공화당이 연방의회의 상하원에서 다수당으로 군림한 데다 대통령도 공화당 출신이니 견제가 힘들었다. 균형 대신 일방주의가 난무했다.
그것도 보통의 일방주의라기보다는 절대적 일방주의였다. 여기에는 2001년 9.11이라는 전례 없는 테러사건이 뒷받침되었다.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미 국민 전체가 테러방지를 위해서라면 선제공격을 불사하는 모든 조치를 취하도록 대통령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그래서 이라크 공격에도 반대가 있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
조금만 비판적인 말을 해도 비애국자로 몰려 야당 정치인들은 입도 벙긋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 갈 수밖에 없었다. 2004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존 케리도 이런 상황에서 이라크 전쟁을 정면으로 반대도 못하고 어정쩡한 입장만 취하다 보니 낙선의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7일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했고 상원 장악도 가능권 안에 서게 되었다. 미국 정치에서 견제를 가능케 하는 균형이 복귀된 셈이다. 상원 다수에는 못 미치더라도 하원 다수당으로서의 힘으로 공화당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의회와 행정부간의 대결로 국정이 교착상태에 빠질 가능성을 염려하는 사람도 있지만 민주정치는 이런 교착 상태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경질도 이런 영향의 여파이다. 그러나 부시는 이 정도 조치로 레임덕 징후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번 선거는 2008년 대선을 예견케 하는 것으로 더 의미가 있다고 보겠다.
민주당은 앞으로 2년간 공화당의 부패상과 이라크 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정책 대안에 반영하는 노력에 치중해야 할 것이다. 민주당이 이번 선거에서의 모멘텀을 유지하면 2008년 대선 성공도 눈앞에 보인다.
이번 중간선거로 예견되는 것은 여성 전성시대이다. 우선 내년 1월이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가 등장한다. 연방하원 의장은 대통령과 부통령 유고 시 대통령직을 승계하는 자리다.
곧 이어 뉴욕주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대선 후보 지명전에 뛰어들텐데 그때쯤 되면 여성의 대권 자격 같은 것을 논하는 것은 촌스러워 보일 것이다. 이라크 전쟁의 실책으로 가능성이 희박해졌지만 국무장관인 흑인 여성 콘돌리자 라이스가 공화당 대선 후보군으로 떠오른다면 여성시대는 실로 절정에 달아오를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또 느낄 점은 미국 유권자들의 유연성이다. 로널드 레이건 이후의 보수세력에 대한 재평가이다. 보수 세력권 내에서조차 자성의 기미가 보인다. 보수적인 애리조나에서 동성결혼 금지법안이 부결되었고, 동성애 반대 선두주자인 펜실베니아의 샌토롬 상원의원이 재선에 실패했다. 캘리포니아에서 미성년자 낙태시 의사가 부모에게 알리는 것을 의무화하는 주민발의안 부결, 정부의 토지 수용권 축소안 부결 등은 앞으로 공화당 극우파 세력들의 진로를 재검토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공화당으로는 드물게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압도적 표차로 재선에 성공했다. 이는 민주당 후보인 앤젤리디스의 선거운동이 워낙 미진한 결과이다. 일련의 주민발의안 통과로 캘 리포니아 주민들은 지옥 같은 프리웨이 교통체증에서 해방될 가능성이 있으니 기뻐하자. 또 콩나물 교실도 개선을 보일 것이다. 북핵 문제에 있어서도 부시 행정부의 융통성을 기대해 볼만하다.
무엇보다도 선거는 변화의 계기를 만든다. 이 제도를 통해 행정부와 의회의 인물들이 교체되고 정책이 수정되는 민주주의 본질을 흠뻑 즐기는 기회로도 삼자.
<차만재> 칼스테이트 프레스노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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