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연봉 1,500만달러를 받았던 박찬호가 ‘대박시대’를 마감하고 FA시장에 나왔다. 시즌 성적 7승7패에 방어율 4.81. 나이도 나이고 지난 몇 년 동안의 성적이 몸값에 크게 미치지 못했던 만큼 또 한번의 대박은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다.
선수로서 심한 부침을 겪으면서 자신의 홈페이지에 간혹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곤 했던 박찬호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현재 입지를 냉정하게 자가진단하는 발언을 했다. “5년 전만 해도 협상 1순위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냥 평범한 선수일 뿐이다. 그렇지만 최고의 선수도 선수고 평범한 선수도 선수다.”
지금 우리는 평범함의 가치를 깎아 내리는, 비범함에의 신화가 판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원형을 지닌 인간의 본성과 언론, 그리고 성공예찬 도서 등이 한데 어우러져 이런 분위기를 더욱 부추긴다. “평범함은 반역”이라는 독설까지 난무하는 사회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비범을 목표로 땀 흘리고 노력하지만 누구나 여기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타고난 능력의 차이도 차이지만 결국 비범과 평범은 상대적으로 규정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야구의 경우도 그렇다. 비범한 투수의 탄생은 그만큼 많은 평범하거나 형편없는 타자를 전제로 한다. 또 뛰어난 타자는 투수들의 치솟는 방어율을 먹으며 자란다. 모두가 비범한 타자와 뛰어난 투수가 될 수는 없다. 대부분의 비범이라는 것은 결국 타인의 평범을 전제로 한 상대적인 평가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제의 비범함이 오늘에는 평범함으로 내려 앉기도 한다.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장인물중 하나인 붉은여왕은 항상 달리는 데도 여전히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주변의 풍경도 여왕과 함께 같이 달리기 때문이다. 붉은여왕처럼 열심히 달려야만 그나마 평범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요즘의 살풍경한 사회분위기이다.
우리가 사는 지구표면의 70%가 물이듯 지구상에 발을 디디고 사는 인간의 80% 이상은 평범한 실력, 평범한 가치관, 평범한 외모를 지닌 평범한 사람들이다. 세상을 지탱하고 떠받치는 것은 이런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세상은 평범에 대해 부정적인 잣대를 서슴없이 들이댄다. 그래서 평범한 직장인들은 괴롭고 뛰어나지 못한 아이들은 힘들어 한다.
영화 ‘아마데우스’는 비범함과 평범함의 갈등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모차르트라는 비범한 천재와 경쟁해야 했던 궁중음악가 살리에르의 고뇌와 질투가 잘 그려져 있다. 음악가로서나 인간으로서 살리에르는 썩 괜찮은 사람이었지만 비범한 모차르트 앞에만 서면 초라해지는 ‘평범한’ 자신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비범의 신화가 판치는 세상에서도 평범함은 그 미덕과 가치를 잃지 않는다. 박찬호의 인터뷰를 보니 세월 속에서 평범함의 미덕을 어느 정도 깨우친 듯하다. 박찬호에 대해 “대박 계약의 두통거리가 사라짐에 따라 제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 스포츠전문지 SI 기사에는 새겨둘 만한 교훈이 담겨 있다.
돈값을 해야 한다는 비범함에의 부담을 털어 버리고 평상심으로 투구하다보면 의외로 좋은 성적을 거둘지도 모른다. 만약 살리에르가 평범함의 미덕을 조금이나마 깨우쳤더라면 모차르트와 연관된 부정적 이미지가 아니라 좋은 작곡가로 음악사에 한 줄 이름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박찬호의 몸값은 얼마나 될까. 그의 나이와 메이저리그 평균연봉 등을 감안해 볼때 연 200만~250만달러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평범한 선수의 250만달러 몸값이라. 평범하다고 다 똑같은 것은 아닌 모양이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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