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미국에서 어느 때보다 떠들썩한 중간선거로 모든 미디어가 선거에 집중하고 있을 때 니카라과에선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7일 아침 다니엘 오르테가가 16년만에 다시 대통령이 되었음이 공식 선포되었다.
지난 1997년 인권단체의 일원으로 니카라과를 방문했던 인연으로 나는 선거를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옷은 물론 말투조차 거친 혁명가에서 보수 정치가의 이미지로 바꾼 오르테가는 미국과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자유무역을 계속할 것이며 반대정당과도 손잡겠다는 의지를 밝혔던 것이다.
동시에 그는 미국에 빌붙지 않겠음도 확실히 했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비난했고 현재 수출의 60%가 미국과의 거래이지만 앞으로는 유럽과 남미와도 거래할 것이며 최근 부시를 악마라 불렀던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 구상중인 반미 무역단체에 가입하겠다고도 했다.
니카라과엔 1934년부터 미국의 지원 속에 민족주의 지도자 산디노를 암살한 소모사 정권이 시작되었다. 45년간의 그의 독재정치는 1979년 민중봉기와 오르테가가 지휘한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 혁명에 의해 붕괴되었다. 좌익이라면 무조건 앨러지 반응을 보이는 미국은 이 막시스트 출현에 긴장하여 소모사의 방위군을 전격적으로 지원했지만 혁명을 막지 못했다.
혁명 후엔 반정부 게릴라 단체인 콘트라를 조직하여 천문학적 수준의 군사지원 속에 내란을 일으켰지만 새 정부를 막지 못했다. 레이건은 물론 카터 행정부 시절에 있던 일이다
니카라과에 군사·경제 원조를 보내지 말라며 타국까지 협박한 미국의 훼방에도 불구하고, 오르테가 행정부는 1985년부터 1990년까지 토지분배, 건강, 교육, 정치참여, 농사 등의 지원확대 등 국민복지 정책으로 문맹률을 20%까지 낮추면서 국민생활을 급속도로 향상시켰다.
하지만 농촌을 이해하지 못한 토지개발 정책으로 농민들로부터 인심을 잃게 되고 자원 부족, 지진, 허리케인 등 대형 자연재해를 당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미 언론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꽃피웠던 그의 업적을 전혀 무시한 채 어두운 상황만 보도했다.
오르테가는 결국 미국의 봉쇄조치 협박 속에 치러진 1990년 선거에서 차모로에게 정권을 물려주었고 이후 니카라과는 또다시 지독한 가난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세계은행과 IMF가 강요한 구조조정은 수많은 실업자를 만들면서 빈민의 가난을 더욱 부추겨 남반구 두번째의 빈민국을 만들었다.
미 주류언론은 38.5%의 투표율로 재등장한 그를 다시 냉랭하게 기사화하고 있다. 그의 당선이 순전히 부인의 덕이며 그가 부인과의 20여년 동거생활을 청산하고 지난해에 성당에서 결혼함으로써 천주교인들의 표를 늘렸다고도 했고 뚜렷한 근거 없이 부정선거를 논하기도 했다.
이전의 적을 부대통령으로 선택했고 선거 바로 전에 임신중절 전면 부정, 성당 결혼을 한 사실 등으로 보아 우선 권력을 잡고 보겠다는 심산을 보인 그는 선거 동안 공식 인터뷰에 전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래서 사랑, 평화, 화해를 내건 그의 진짜 모습을 아무도 추측하지 못하고 있다. 자국인들이나 관계자들은 혁명 후 정권 때와 상황이 많이 다른 지금 그 역시 달라지지 않을 수 없겠지만 인구밀도와 가난이 극에 달한 현재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 것임을 예견한다.
1997년 니카라과에 경제정책 조사를 하러 갔다가 마나과의 한 빈민촌에서 민박하며 그들과 정을 나누게 된 나로선 돼지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잠자면서 내 밥그릇에만 고기를 얹어 주던 그들, 산꼭대기 흙바닥에서 비좁게 자던 커피 농부들, 어린 자식들을 방에 가두고 일하면서 기본 인권을 요구하다가 쫓겨난 자유무역지구의 미국회사, 한국회사, 대만회사 노동자들, 배가 고파 고무접착제를 흡입한 채 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을 돌려주길 빌 뿐이다. 빈민의 영웅이었다가 손꼽히는 부자로 변신하여 가난퇴치에 주력하겠다는 약속을 믿어볼 뿐이다.
<김보경> 북켄터키주립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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