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때만 되면 인물중심으로 정치꾼들이 ‘헤쳐 모여’식으로 인물예속 정당을 결성하고 선거가 끝나자 곧 해당해 버리는 한국 정당의 병폐는 건국 이래 근 60년 동안 반복돼 왔다. 이로 인해 국론분열과 국력소모는 물론 정치적 사회적 불안을 초래했다.
일반적으로 정당은 현대정치의 생명으로 간주되고 있다.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E. 버크는 “정당이란 특정주의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그 주의에 의거하여 공동의 노력으로써 국민적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결합된 단체”라고 정의했다. 이에 따라 정당은 포괄적인 국민여론을 수렴하여 의회에 반영하기 위해 여론의 조직화, 통일화, 가치화의 기능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주의 양상은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고 소위 ‘문민정부’ ‘국민정부’ ‘참여정부’라는 슬로건에 걸맞지 않게 지연 학연 혈연을 통한 코드 맞는 사람들끼리 국가의 지배권을 장악하는 과두정치화가 되었다.
또한 주권을 가진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표자들로 구성된 의회가 청와대의 ‘들러리’격으로 권력의 시녀가 되어 의회제적(議會制的) 과두정치화가 되곤 했다. 즉 국회의원들은 행정부의 지도자 혹은 정당 간부에게 맹종하지 않으면 차기 총선에서 공천을 주지 않으므로 정치적 결정권의 실질은 의회로부터 행정부로 옮아가게 되고 의회는 행정부의 행위를 정당화시켜주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 사회학계 원로 최재석 박사는 “왕초·똘마니 집단의 성격을 많이 구비하고 있는 집단의 하나가 바로 한국의 정당”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그는 이어서 갈파하기를 자기의 두목 앞에서는 무조건 복종하면서 타인의 두목 앞에서는 통박과 중상모략을 예사로 행할 수 있는 성격이 파벌 형성의 요인이 되고 있다고 했다. 타당에 대한 인격 존중이나 정책의 대결 및 실천에 의한 페어플레이가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구나 당사자인 입후보자 상호간은 물론 선거운동원 간에도 선거가 끝난 후까지 오랜 기간 원수 같이 여기는 등 정치생활과 사회생활을 혼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뿐인가. 누구를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뜻의 ‘누구 사모’라는 집단은 중심인물의 주변에서 장막을 치고 당의 리더십을 폐쇄적으로 만들어 과두화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이와 같은 한국 정당정치의 ‘헤쳐 모여’와 ‘들러리’라는 병폐를 씻어내기 위해서는 정당이 국민으로부터 존립의 긍정적 가치를 인정받고 국민의 마음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그래서 정치운용상 필요불가결의 요소가 됨으로써 본연의 정당제도가 정착되리라 생각된다.
한국이 대선 운동기간 꼭 경계해야 할 것은 ‘헤쳐 모여’의 혼란과 상호비방으로 인한 와중에 김정일의 위협적 핵 심리전에 말려들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유대민족의 지혜를 담은 탈무드에는 뱀의 머리와 꼬리에 비유하여 지도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꼬리가 머리보고 불평하기는 “나는 뱀의 일부분인데도 언제나 노예처럼 달라붙어 따라 다니기만 해야 하는가”라고 했다. 이에 대해서 머리가 답하기를 “너에게는 앞을 볼 눈도 없고 위험을 알아차릴 귀도 없으며 행동을 결정할 두뇌도 없지 않은가. 그렇게 불만이 있다면 역할을 바꿔서 해봐라”고 했다.
그리하여 꼬리는 앞장서 나가다가 가시덤불 속에서 심한 상처를 입었고 불길 속에서 헤매다가 죽기 직전에 이르러서야 머리의 필사적인 도움을 받았으나 너무 늦어 결국 머리는 맹목적인 꼬리에 의해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도자를 선택할 때는 언제나 머리를 선택해야지 꼬리와 같은 자를 선택하면 모두가 죽는다는 것을 첨언해 둔다.
박종식
예비역 육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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