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달러68센트. 이틀 동안 배심원 봉사를 한 후 LA카운티로부터 차량비용으로 받은 수표 금액이다. 그것도 첫날 분은 없고 둘째 날부터 하루 기본료 15달러에 법원까지의 주행료를 합산한 실비 보상금이었다. 말이 보상이지 주차비만 16달러가 들었으니 밑지는 거래였다.
필자는 지난 11월 첫 주 배심원으로 봉사하도록 소환을 받고 집과 가까운 밴나이스 법원에서 2일 동안 보냈다. 당초에는 LA 다운타운에 소재한 법원에 가도록 되어 있었으나 사무실과 가까운 곳으로 바꿔 달라고 요청해서 받아들여진 것이다. 배심원 봉사는 사실 바쁜 사람들에게는 매우 귀찮은 일이어서 가급적 이를 모면할 사유를 찾아보지만 해마다 까다로워지기 때문에 쉽게 빠져나오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영어가 서투르다, 몸이 아프다, 사업 때문에 경제적 손실이 크다 등등 이런저런 핑계로 면제가 통했지만 요즈음은 연기허락을 받기 전에는 일단 제 날짜에 응하도록 규정이 강화되었다. 배심원 봉사가 왜 나만 그렇게 잘 걸리는지 은근히 시민권 받은 것이 후회되기도 하지만 한편 명실상부한 미국시민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배심원으로 소환된 사람들은 우선 대기실에서 배심제도에 관한 취지와 절차 등 유의사항을 들은 후 그룹으로 나눠 심리하게 될 법정을 배정받아 그 곳에서 정식 배심원으로 선정될 수 있는지 자격을 심사받게 되는데 모두가 이름 대신 무작위로 뽑힌 번호로 호칭된다.
우리 그룹은 모두 70명으로 판사 앞에서 선서를 한 다음, 번호 순서에 따라 차례로 직업, 결혼여부, 가족관계, 거주지, 배심원 경험유무 그리고 본 사건과의 개인적 상관 등을 청취한 다음 판사와 원고, 피고의 3중 심사를 거쳐 12명의 배심원과 2명의 후보를 뽑았다. 우리가 맡은 사건은 형사사건으로 14세 소녀를 납치, 성폭행한 청년에 대한 재판이었는데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 내려는 원고와 피고측 대리인인 검사와 변호사의 까다로운 심사로 둘째 날 오후에 가서야 겨우 배심원 선별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필자는 후보 2명을 뽑는 마지막 대열에 끼어 심사를 받았지만 상대적으로 부족한 의사소통 때문에 탈락되고 말았다. 2일 동안 출석하였으나 배심원 선별작업에 시간을 보내고도 정작 배심원으로는 참여치도 못한 채 법원을 떠나는 마음은 홀가분하기 보다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
배심제도는 법률의 획일적 규정과 판사의 단독 결정에 시민의 건전한 상식적 판단을 반영시키기 위하여 도입된 민중재판의 한 형태로 아마도 지금은 영국이나 미국에만 남아있지 않은가 싶다. 하지만 우리는 로드니 킹 사건이나 O.J. 심슨 같은 재판에서 배심제도의 모순을 확실히 경험하였다.
민중재판하면 한국동란 때 겪은 인민재판이 떠오른다. 순진한 사람들을 모아놓고 선동적이고 위협적인 분위기에서 미리 짜여진 각본에 따라 인민의 이름으로 죄를 선고한 후 처형시켰던 그 무지막지한 재판 말이다. 또한 세계 도처에서 국민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반민주적인 행위가 얼마나 많은가. 수백의 시민단체를 앞세운 한국의 참여정부가 허울만 열린 정권이지 실제로는 같은 코드 인사로만 구성된 꽉 닫힌 정권인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곳 미주에서조차 반민주적인 회칙이나 정관으로 그 단체의 공공성을 의심케 만드는 한인단 체들이 있다. 그럴듯한 미명하에 회원들의 의사는 원천적으로 봉쇄해 놓고 회장이나 이사장이 자기 코드에 맞는 사람을 이사로 뽑아놓고 그들이 다시 회장이니 이사장을 뽑는 정관을 가진 단체들인데 이들을 어찌 대표성이 있는 진정한 단체라 일컬을 수 있을까? 이러한 비민주 단체들이 존속하는 한 그 단체뿐만 아니라 한인사회 전체를 건전치 못하게 만들고 계속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조만연
수필가·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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