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며칠간 다녀왔다. 모두 죽을 지경이라고 하면서도 서울의 백화점은 붐비고 사람들의 옷차림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허리띠 졸라맨 기색이 전혀 없다. 그리고 입만 열면 악에 바친 사람들처럼 독기 가득한 말만 쏟아낸다. 노무현 정권 욕하는 것 듣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만나는 사람마다 열을 올리며 똑같은 메뉴를 반복하니까 지루한 느낌이 든다.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될까. 국민들의 관심이 온통 여기에 쏠려 있다. 어느 자리를 가 봐도 처음엔“노무현 운운”으로 욕지거리가 시작된 후“이명박이냐, 박근혜냐”로 화제의 방향이 바뀐다. 현재까지는‘이명박’이 일방적으로 리드하고 있다. 어제 어느 TV 방송국 조사에서는 이명박의 지지율이 드디어 40%를 넘었다(40.8%). 박근혜(18.4%)와 고건(17.2%)을 두 배나 앞지르고 있다. 열린우리당 후보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조차 없다. 기껏해야‘고건 카드’밖에 끄집어낼 것이 있겠느냐는 생각들이다.
며칠 전 인사동 거리에 나갔다가 한구석에 사람들이 몰려 있어 뭔가 하고 들여다보았더니 이명박씨가 어디에 전화하고 있었다. 인기가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자와 눈이 마주치자 서로 알지도 못하는데 V자를 그리며 미소 짖는다. 그는 스타나 다름없었다. 연기가 보통이 아니다. 행정전문가 같은 인상이 아니라 정치가다운 냄새가 물씬했다. “누구에게 연기 자문을 받고 있구나.”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상냥하면서도 가벼운 인상의 옛날 이명박이 아니다. 묵직하고 말을 아끼는 스타일로 변했다. 현재로는 ‘이명박’이 가장 당선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것 같은 분위기다. 정말 그렇게 될까.
이명박씨가 한나라당 후보로 지명되지 못한다면 지금의 인기는 아무 의미가 없다. 누가 한나라당 대통령후보가 되느냐. 이것이 문제다. 그런데 당권 장악에서는 박근혜씨가 만만치 않은 조직력을 갖고 있다. 박근혜씨는 침몰해 가는 당을 구한 공로가 있기 때문에 한나라당 국회의원, 도지사, 시장 치고 그의 신세 지지 않은 당원이 드물 정도다.
거기에다 또 한 가지 이상한 바람이 요즘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박정희 신드롬’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과 같은 난국을 헤쳐 나가려면 박정희 같은 사람이 나와야 한다는 여론이 의외로 강해 기자도 약간 놀랐다. 이명박씨가 선글라스를 쓴 모습이 박정희 대통령 비슷한 인상을 풍겨 “박정희 흉내 낸다”고 도마 위에 오른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박정희 바람은 박근혜씨에게 유리하다.
대세의 흐름이나 인기도의 지지율에 있어 이명박씨가 너무나 이회창 후보 때와 닮아 어딘지 불안한 감이 있다. 지난 선거에서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정말 별로였었다. 그런 그가 돌풍을 일으키며 ‘이회창’을 꺾는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는가. 한국의 대통령 선거는 그만큼 예측불허적인 요소를 안고 있다.
내년 12월에 있을 한국의 대통령 선거는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대결이 아니라 사실상 ‘이명박’과 ‘박근혜’의 대결이다. 이회창씨가 다시 꿈틀거리고 있지만 그는 더 이상 킹은 아니고 킹메이커로서의 역할에 그칠 것 같다. 만약 이명박과 박근혜 두 사람이 표 얻은 순서대로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나누어 갖는 정치적인 합의만 본다면 한나라당의 한은 풀릴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경쟁이 과열돼 게임의 룰을 무시한다면 한나라당이 해체될 뿐만 아니라 폭동에 맞먹는 국민 소요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clee@koreatimes.com
<이 철> 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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