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ready for the crazy Holidays?”
한 백인 아줌마가 옆에 앉은 또 다른 아줌마에게 힘주어 묻는다.
뛰어 다니는 아이를 옆자리에 눌러 앉히며 완고한 얼굴로 타이르는 잘 생기고 이성적으로 보이는 이 사람들도 명절 증후군이라는 게 있구나 하는데 생각이 미치자 전에 살던 옆집 아줌마가 해마다 구워 주던 호박 케이크가 떠올랐다.
딸 셋을 그야말로 훌륭한 처자로 키워낸 ‘도나’라는 이름의 독일계 여성인 옆집 아줌마는 우리가 만두 빚고 떡국 끓이고 하듯이 매년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호박 케이크를 구워 나누어주곤 했다. 크리스마스 색깔의 티슈 페이퍼에 묶여서 우리집으로 건너 오던 달고 향기나는 케이크가 입에 맞지 않아 처음 몇 년 동안은 한 두 조각 베어 먹고 냉장고에서 이리저리 뒹구는 찬밥 신세가 되었었지만 해를 더할수록 그 맛의 깊이에 익숙해져 차 한잔과 즐겁게 곁들여 먹을 수있었다.
내가 처음 미국에 와서 14년을 살았던 곳의 터줏대감 같은 도나의 가족은 우리 가족에게는 특별한 사람들이다. 자기 아이들이 쓰던 아이용 옷걸이를 묶어서 가져다 주거나 이사가는 친구의 블라인드가 우리집에 맞을 것 같다면 얻어다 걸어 주거나 아무튼 미국사람에게 덧정을 붙이지 못하던 나에게 언제나 문 두드리면 반갑게 맞아주던 그런 가족이었다.
고마움에 내가 답례했던 촛대나 꽃이나 그런 것들은 나름대로 고민한 것이지만 빈곤한 선물 문화에서 자란 딱 그 수준답게 마음을 담지 못한 것 아니었나 싶다. 그래도 꼬박꼬박 감사의 편지를 문앞에 놓고가던 그 가족의 수수하고 한결 같은 배려에 배운 것이 참 많았다. 2년전 남편의 직장 때문에 잠시 이곳을 떠나 서울에 머무르던 우리 가족에게 우리 살던 집이 수리되는 과정까지 소상히 알려 주는 편지를 보내와 진실한 그 가족의 모습에 다시 한번 감동을 받기도 했다.
아직도 도나의 남편 ‘빌’은 낡은 아우디를 아침 저녁으로 갈고 닦아 부릉부릉 엔진 소리 요란하게 동네 정적을 깨우기도 하고 손수 지붕에 올라가 뚝딱 거리기도 하는 모양인데 지난 여름 딸 셋이 쓰던 방의 허전함이 싫었는지 우리가 또 한국에 가야되면 아이는 자기 집에 남겨두고 가라며 정스럽게 이야기해 주어서 몰랐던 따뜻함을 느꼈다.
내 아이가 서너살 쯤 되었을 때인가 ‘지나’라는 그 집 막내 딸아이가 학교에서 sharing을 하는데 우리 아이를 빌려?가고 싶다고 해서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따라가 보았더니 교실에 데려간 아이를 여러명이 둘러싸고 강아지 보듬듯이 쓰다듬고 해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에서 방송국에 다니고 있다는데 연말에 온다고 하니 만나볼 기쁨이 기다린다. 의사가 된 속 깊은 큰딸과 선생님이 된 둘째는 아이까지 낳아 이번 크리스마스에 모두 집으로 돌아온다고 그 소식을 전하는 도나의 목소리가 행복하다. 큰 가족이 되어 연말을 보낼 도나의 가족을 생각하니 나도 절로 기분이 좋다.
고맙고 좋은 이들을 생각하며 선물을 준비하고 카드를 쓰고 하는 일이 숙제처럼 따라 다녀도 나는 매년 이맘 때의 조금은 넉넉한 분주함이 좋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내 안에서 태어나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며 조금씩 조금씩 사랑을 키워가고 마음을 다해 이웃과 친구와 가족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시간들.
눈이 내리고 교회의 종소리는 울려 퍼진다. 집집마다 웃음이 피어나오고 저녁 식탁에는 온기와 정담이 가득하다. 모든 이가 화해한 거리에 갈 곳 없는 사람은 없다. 춥고 배고픔이 없는 사람들은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마주한 얼굴에 신뢰를 담아 평온하다. 따뜻한 시간과 평화 그리고 그 영원한 숙제인 사랑! 그런 것들이 잡힐 듯 다가와 있는 시절. 아마도 우리가 해마다 성탄절을 기다리는 이유는 이런 상상 속의 충만함이 가정과 사회에 넘쳐 나길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에게 그런 따뜻한 크리스마스가 되시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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