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이면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한다. 작년 10 월부터 원서를 쓰기 시작해서 지원서를 넣고 합격 여부를 통보 받는 일이 이제 모두 끝났다. 학력고사 세대인 나는 대학을 딱 하나 골라서 단 하루의 시험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입시를
거쳤기 때문에 미국의 입시를 어쩌면 만만하게 보았다. 시험도 여러 번 볼 수 있고, 공부 이외의 다른 활동도 입시에 영향을 주고, 지원서도 여러 대학에 넣을 수 있고, 아이비 대학이 아니어도 졸업 후 여러 길이 있는데 뭐 그리 문제인가 싶었다. 하지만 막상 겪어보니 한국의 입시지옥과 온도차이가 있을 뿐, 미국 입시도 나름대로 치열했다. 딸은 고등학교 내내 꽤 열정적인 시간을 보냈는데 대학입시 문턱 앞에서는 그저 대학 입시를 얼마나 알차게 "준비" 하였는지 입시사정관에게 평가받아야 하는 활동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고등학교는 대학을 위한 준비이고, 대학은 취업을 위한 준비이고…. 과연 모든 것이 준비여야 할까?
이적의 노래 <준비>처럼 준비하다가 인생이 끝나면 어떡하려고.
그러다가 며칠 전 풀드 포크(Pulled Pork)를 만드는데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풀드 포크는 돼지목살 덩어리를 오랜 시간 익혀서 부드럽게 되면 바비큐 소스와 섞어서 잠깐 가열한 뒤 먹는 요리이다. 돼지고기를 맛있게 삶으려고 더치오븐에 각종 허브 향신재와 과일을 깔았다. 돼지고기를 얹으려다가 보니 냄비에 들어있는 재료가 예뻤다. 누린 내 대신 풍부하고 향긋한 과일 내가 감도는 풀드 포크를 만드는 건 아름다운 일이었다. 냄비 바닥에 깔린 양파, 타임, 로즈마리, 월계수 잎, 사과, 오렌지가 완성된 요리에서는 비록 보이지 않을지라도. 신선한 재료를 눈으로, 코로 즐기면서 맛난 풀드 포크를 그날 저녁 만들어냈다.
언제까지 준비만 해야 하는가 지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준비하는 일이 더 아름답기도 하다는 걸 잊지 말기를. 딸에게도, 나에게도 속삭이고 싶은 말을 이 그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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