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4.29폭동이 터진 후 한 달쯤 되었을 때 일이다. 인종갈등 해소방안을 논의한 세미나에서 어떤 흑인 교수와 나란히 앉게 되었다. 잠시 쉬는 시간에 그는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코리안들이 이민 1세대인데도 그처럼 사업에 성공하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아직 영어도 서투르고 미국 문화에 적응도 안 된 처지인데요. 우리 아프리칸 아메리칸(흑인)들은 노예로 팔려온 지 이제 7~8세대가 넘어가고 있고 영어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이처럼 여전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말을 들으니 인종폭동의 최대 피해자라는 억울함이 잠시나마 풀어지는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코리안들은 대부분 교육받은 사람들이 이민을 왔고 또 튼실한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삼고 있으며 특히 한국 전쟁을 겪은 세대라서 강인한 생존 경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며 숨 쉴 틈도 없이 설명해 주었다.
허지만 지금까지 마음이 그리 개운치 않다. 과연 우리 코리안들이 250여 인종이 몰려 살고 있는 미국에서 존경을 받을 만한 인종이던가 하는 질문이 머리에서 뱅뱅 돌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우리 코리안들이 백인들보다 존경을 받고 있는가? 같은 아시안들인 중국인, 인도인, 베트남인들보다도 더 우수한가? 아니, 축구를 했다면 꼭 이겨야 하는 적수인 일본인과 비교해서는 어떤가?
제1회 미 주한인의 날을 제정한 것은 기쁘고 보람 있는 일이다. 미주 한인역사의 큰 획을 긋는 일이라고 주저 없이 평가할 수 있고 미주에서 조국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선열들에게 드리는 값진 선물로도 생각된다.
그러나 이 날이 단순히 기뻐하고 축하하는 날에 그쳐서는 안 된다. 코리안의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날로만 삼아서도 안 된다.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미주 한인 전체가 무엇인가를 새롭게 결심하는 모멘텀이 되어야 한다. 진실로 큰 결단의 날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결심해야 할까?
다른 것 아니다. 우리 코리안들이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민족이 되도록 하자는 결단이다. 다른 말로 하면 “코리안 최우수화 운동”에 참여하자는 결단이다.
이것은 결코 인종청소를 자행한 히틀러식 민족우월주의 사고방식에서 나오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온 세계를 섬기라는 단군의 홍익인간(弘益人間) 사명에서 하는 말이다.
20세기 후반부터 한인들에 대한 세계인들의 인식이 크게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한국기업의 세계 진출, 각종 체육경기 실적, 한국인 출신 유엔 사무총장 취임, 선교사 파송 제2위 민족… 이런 것들이 코리안 전체의 지위 향상을 웅변으로 증거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경지에 이르려면 아직 멀었다. 교육수준, 경제수준, 지도력 수준에 있어서 결코 상위 그룹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도덕성, 정직성, 성실성, 근면성, 책임감, 공중질서 의식, 준법정신, 민주주의 신념, 인권의식 같은 인간의 기본 가치에 있어서는 세계인들 앞에 부끄러움이 적지 않다.
게다가 김정일 정권의 무뢰하고 거친 정치는 코리안 전체 이미지에 큰 악재가 되고 있지 않은가.
이제 우리 코리안들이 세계에서 제일 존경받는 민족이 되도록 다시 한 번 굳게 굳게 결심하기로 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배우겠다는 결심을 해야 한다. 평생토록 학생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신앙생활도 바르게 해야 한다. 교육과 신앙이 민족을 키우는 가장 중요한 두 기둥이란 뜻이다.
이를 바탕으로 다른 인종들에게 사랑 그것도 큰 사랑을 베풀겠다는 홍익인간이 되기로 크게 결단해야 한다. 존경을 가져오는 가장 큰 힘은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산 안창호는 애기애타(愛己愛他)라는 교훈을 남겼다. 자기를 사랑하듯 남을 사랑하라는 뜻이다.
<이정근> 목사·유니온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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