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은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때는 인정사정없이 비판하지만 고인이 되면 역사적 평가에서 후한 점수를 준다. 재임 때 무엇을 잘못했는가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무엇을 잘했는가의 긍정적인 면만 부각시켜 그의 업적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대부분의 미국 대통령은 죽어서 영웅이 된다.
지난 연말 포드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미국 신문과 TV 뉴스는 며칠 동안 포드 관계기사로 도배질하다시피 꽉 채웠다. 그런데 그 내용들이 포드 칭찬 일색이라 읽는 사람이 “포드가 정말 그렇게 위대한 대통령이었나” 의아해질 정도였다.
기자는 포드 대통령을 팜스링스 선더버드 컨트리클럽 안에 있는 그의 집에서 단독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때 내가 받은 인상은 포드는 대통령보다 국회의장이 더 어울려 보이는 정치인 같았다. 온화하고 솔직 겸손하며 상대방의 말을 경청해 주는 스타일로 민주·공화 양당 정치의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로는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의 부인이 백악관 시절 알콜중독에 걸렸다는 소문이 떠도는데 사실이냐”는 질문에 그는 조금도 불쾌한 기색이 없이 “베티가 지금 그것 때문에 알콜중독 치료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설명해 기자가 오히려 약간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포드는 어떤 대통령이었나. 현직 대통령으로 무명의 정치인인 지미 카터에게 패한 인물이다. 최근의 공화당 출신 대통령 중 가장 빛이 나지 않는 대통령에 속한다. 그런데도 포드가 세상을 떠나자 미국 언론은 그가 브레즈네프와의 회담에서 핵무기 감축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등 생전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잘한 것에만 초점을 맞추어 나열하니까 포드의 과거 이미지가 며칠 사이 180도 달라졌다.
미국과 너무나 비교되는 것이 한국의 대통령 평가 문화다. 한국은 지금까지 9명의 인물이 대통령을 지냈지만 대통령 기념관 하나 없다. 모두 규탄 당하거나 심지어 교도소까지 들어갔다 나오는 치욕을 안겨줘 역대 대통령들이 줄줄이 역사의 죄인이 되어 버렸다.
이승만 대통령은 부정선거로 장기 집권했지만 건국의 아버지이고,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독재 했으나 경제개발을 이루어냈으며, 전두환 대통령도 광주사태라는 원죄가 있지만 단임제와 평화 정권교체의 장을 열어 놓은 인물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물태우로 불렸지만 선거공약을 가장 많이 실천한 대통령이고 남북회담의 기반을 닦은 업적이 있다. 김영삼 대통령은 아들에게 지나치게 의존하여 망신당했으나 하나회 등 군부수술과 금융 실명제를 과감히 단행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에 엄청난 액수를 불법 지원해 말썽이 났으나 남북의 긴장완화에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권위를 잃었으나 그가 제왕적 대통령 시대에 종지부를 찍은 것만은 사실이다.
영국이나 미국의 민주주의 기준으로 보면 한국 대통령은 모두 죄인이고 비도덕적인 정치인들이다. 그러나 안보나 사회적인 제도면에서 한국은 한국 나름의 독특한 상황이 있다. 보수와 진보세력 사이에 한 맺힌 정치가 지금처럼 계속되면 후세인처럼 되진 않겠지만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인물마다 만신창이가 되어 상이군인 제대다. 물러난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기준이 달라질 때가 됐다. 대통령에 대한 돌팔매는 현직에 한해야 한다. 역대 대통령 모두에게 돌을 던지는 것은 한국인 스스로가 누워서 침 뱉는 격이다.
clee@koreatimes.com
<이 철> 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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