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104년 전인 1903년 1월13일, 102명의 한인들이 하와이 땅에 도착 하면서 미국 이민이 시작 되었고, 바로 그 날을 연방의회가 미주 한인의 날로 선포했다. 한인들의 자부심과 긍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인과 미국인의 첫 접촉은 1853년 1월 부산 용당포 앞바다에 나타난 이양선이었는데, 이는 일본 북해도 근해의 포경선이 표류한 것이었다. 두 번째 미국인의 한국 접촉은 1855년 6월 강원도 통천 앞바다에 난파한 포경선인데, 4명의 선원이 2개월간 한국에서 머물다가 청국을 통해 귀국했다.
미국 땅을 처음 밟은 한국인은 인삼상인들로 알려져 있다. 1899년 인삼을 팔기 위해 도미했던 평안도 인삼 상인들은 청국을 통해 들어갔기에 미국 이민국에는 중국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인의 날이 주는 의미는 대단하다. 그 내면에는 우리 조상이 겪은 상상을 초월한 아픔이 서려있다. 가난을 벗어나고자 이민선을 타고 먼 타국으로 와서 사탕수수밭의 거칠고 힘든 아메리칸 드림 역사가 시작되었다.
하와이 사탕수수밭 초기 이민자들은 하루 10시간 이상을 따가운 햇볕에 채찍질을 감수해야 하는 노예 같은 생활을 하였다. 적은 임금으로 눈물겨운 생활을 하면서도 푼돈을 모아 조국 독립자금을 보냈다. 또한 자신들의 가난과 무지를 자식들에게는 물려줄 수 없다는 각오로 후세 교육을 위해 헌신했다.
미국 사회에서 소수민족이 유럽계 백인 중심의 전통적 중류사회에 진입하는 데는 3대가 걸린다고 한다. 억척스런 교육열로 한인사회에서는 많은 1.5세 2세들이 전문직으로 활동하고 있다. 타 민족들이 3대에 걸쳐 이룬 사회적 성장을 한인들은 2세대에 이루어 놓은 것이 된다.
이민이란 극적인 상황에서 어떤 명분에도 불구하고 떠나야만 했던 의식의 부채를 지니게 된다. 도피든 망명이든 아니면 사치성 이민이든 이민은 모국에 대해 빚을 진 마음에서 해방될 수 없는 것인가 보다. 이민자는 유목민의 운명, 다시 말하면 역마살이기에 이카로스처럼 날개를 펄쳐야만 새로운 대지에 안착할 수 있다.
고향과 타향, 정착과 이동의 양극점 사이에서 비상으로 타국의 대지에 착근하느냐 아니면 모국과 타국의 중간 지대를 맴돌다 갈기를 접느냐 하는 이민자만의 고민과 숙명이 있다. 그러나 그곳이 어디고 간에 우리 것이 더 그립고 우리 것이 자랑스럽다.
미주 한인의 날은 200만 미주 한인과 더불어 한민족의 영원한 축제의 날이다. 2007년 정해년과 더불어 또 다른 100년의 번영과 풍요를 기원한다.
<안주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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