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LA를 방문 중이신 한국 ‘나눔의 집’ 김군자 할머님을 찾아가 뵈었다. 일제에 의해 종군위안부란 이름으로 희생을 당하신 김군자 할머님은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시는 평범한 우리 동네 할머니셨다. 그러나 김 할머님께서 살아 오신 역경을 들으며 노동을 통해 돈을 벌게 해 주겠다는 말을 믿고 중국으로 보내어진 할머님 앞에 놓여졌던 말로 다 못할 끔직한 아픔의 상처를 접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고아로 사신 할머님의 상처의 삶에 무자비한 일제의 군인들은 폭행으로 귀 고막까지 상하게 하고 몸과 마음에 평생을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할머님은 말씀을 하시며 부끄러운 이야기,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하시게 되어 너무 힘든다는 말씀을 내리 하셨다.
내가 한국 ‘나눔의 집’ 할머님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6년 전 2000년에 종군위안부 법정 소송 시작과 함께 ‘못다핀 꽃’이라는 그림으로 종군위안부의 문제를 세상에 알리셨던 고 김순덕 할머님의 그림 전시회와 증언회를 준비하면서이다. 그 뒤 고 김순덕 할머님은 미연방의회에 처음으로 종군위안부 결의안이 상정되었던 2001년과 샌프란시스코 미일 평화조약 수립 기념 반대 집회로 두 번 더 미국 땅을 밟으셨다.
고 김순덕 할머님이 외치셨던 것처럼 김군자 할머님께서도 차마 잎에 담기 힘든 이야기를 하시러 이곳에 오셨다. 아직까지 공식적인 사죄와 배상을 모른체 하고 있는 일본 정부가 너무나 괘씸해서, 다시는 이런 아픔이 후대에 일어나지 않도록 하시려는 책임감 때문에. 한동안 하는 일에 정신없다는 핑계로 모른척 하고 있던 나에게 김군자 할머님과 고 김순덕 할머님은 세상 어느 누구보다 용감하고 정의에 가득찬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김군자 할머님께서 이곳에 오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초청을 준비하신 석혜인님과 연락이 닿아 한인 사회에 알릴 수 있는 기자회견 자리를 준비해 드리고 또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를 통해 마이크 혼다 연방의원 사무실과 연락을 해 뒤늦게 나마 김군자 할머님께서 15일 미연방 의회 청문회에 증언자로 채택될 수 있도록 나름대로 노력했다. 하지만 지난 몇 해 동안의 무관심, 또 앞으로 내가 얼마나 할머님의 목소리가 헛되지 않도록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인지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는 것을 보며 더 큰 미안함과 두려움도 남는다.
지난 해 말 미 전국의 여러 한인 단체들이 종군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위해 서명 운동을 시작 했다는 소식을 듣고 뒤에 앉아서 박수를 보낸 기억이 생각난다. 아마도 그 때 노력을 했던 단체들에게, 또 오랜 시간 동안 법정 소송을 이끄셨던 정연진님 같은 분에게 조금이라도 덜 미안하고자 이번에 용기를 내어 김군자 할머님을 찾아 뵈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정의를 위해 싸우시는 할머님을 보며 우후죽순 일어나며 “할머님 힘내세요” 하는 모습이 평범하게 살아가려는 나에게 큰 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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