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화가 중의 하나인 반 고흐는 생전에 유화 한 점을 판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당시에 판매된 석판화가 그의 연인 시엔을 그린 ‘슬픔’(사진·1882년 연필 스케치)이라는 그림이다.
“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깊이 고뇌하고 있다고,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 흔히들 말하는 내 그림의 거친 특성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그 거친 특성 때문에 더 절실하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면 자만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 그런 경지에 이르고 싶다. 다른 사람 눈에는 내가 어떻게 비칠까. 보잘 것 없는 사람, 괴벽스러운 사람, 비위에 맞지 않는 사람. 사회적 지위도 없고 앞으로도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갖지 못할, 한마디로 최하 중의 최하급 사람… 그래 좋다, 설령 그 말이 옳다 해도 언젠가는 내 작품을 통해 그런 기이한 사람, 그런 보잘 것 없는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여주겠다. 이 야망은 원한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왔고 열정이 아니라 평온한 느낌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따금 참을 수 없을 고통을 느낀다. 그러나 아직도 내 안에는 평온함. 순수한 조화. 그리고 음악이 존재한다. 동생아, 나에게 전혀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몇 해 안에 아니 지금부터라도 네 모든 희생에 걸 맞는 작품을 보게 될 것이다”
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살아있는 동안 668통의 편지를 씀으로써 우리에게 예술과 삶에 대한 절절한 그의 마음을 전하고 있는데 이 형제의 사랑과 우애는 눈물겹다.
그 당시엔 인상파가 대중들에게 생소한 최신의 미술 풍조였는데 테오는 그 인상파 그림을 이해하고 파는 화상이었고 고흐는 인상파와 거의 같은 시대인 후기인상파풍의 그림을 그림으로써 둘 다 화단에서 최첨단에 있었기에 힘겨운 생활을 하였다.
테오는 달 50프랑(50달러)의 돈을 고흐에게 부쳐주었고 고흐는 하루에 겨우 빵 한 개와 커피로 연명하며 물감과 캔버스를 구하는 가난과 정신병 발작의 어려운 생활 중에 계속 그림을 그리다가 자살하였고 6개월 후 테오도 병들어 형을 따라 죽었다. 고흐의 마지막 작품은 까마귀가 나는 밀밭 풍경인데 그 그림 앞에 섰을 때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가장 격렬한 절망과 고독의 끝에 서 있음을 느껴 가슴이 저미게 아팠다.
고흐는 늘 물감과 캔버스에 돈이 많이 들어 테오에게 미안해했는데 언젠가는 내 그림이 물감 값보다는 비싸질 것이라고 절규했다. 천문학적인 숫자의 값으로 그의 그림이 경매되는 것을 보면 물감을 사기 위해 얼마나 배고픈 것을 참았는지, 발작하면 그림물감을 먹기도 했다는 가엾은 고흐의 아픔이 생각나고, 창조를 돕기보다는 매매에 급급한 미술시장에 한탄하게 된다.
그토록 열악한 환경에서 그토록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고흐가 고맙고 미안하기까지 하다.
알콜 중독에 매독 환자였던 그의 연인 시엔은 남자에게서 버림받고 임신하여 겨울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고흐는 함께 지내며 병간호를 하고 빵을 나누어 먹었고 그녀는 그의 모델이 되어 주었다.
버림받은 여자를 돌보아주는 것이 자신의 인간적인 의무라고 믿었지만 불행한 두 연인은 결국 생활고로 헤어지게 된다.
연인에 대한 깊고 깊은 사랑과 연민이 느껴지는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 토록 인간을 사랑했고 그리워했으나 홀로 죽어가야 했던 한 고귀한 영혼의 외로움과 슬픔에 가슴이 아파온다.
몇 년 전 LA 카운티 미술관에서 반 고흐전이 있었다. 남녀노소, 특히 젊은이들로 가득 찬 전시장에서 숨 막히는 열기 속에 어깨를 맞닿으며 겨우 관람할 수 있었다.
현대인은 왜 그토록 고흐를 사랑하는 것일까?
현대문명 속에서 느끼는 소외감과 비인간화되고 기계화되는 사회에서 어느 정도는 반 미쳐가는 광기를 공감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박혜숙> 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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