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보 두다멜이 자신의 20년 가까운 LA 필하모닉 음악감독의 역사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시즌에 선택한 작품이 베토벤의 ‘장엄미사(Missa solemnis)’라는 사실은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이 곡이 “많은 지휘자들에게조차 감히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작품”이라고 말했다. 기술적으로 방대하고 구조적으로 난해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곡은 지휘자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신앙과 인간, 이상과 현실, 평화와 불안을 한꺼번에 끌어안아야 하는 음악. 20년의 시간을 건너온 지휘자가 마지막에 던질 질문으로, 이보다 더 적확한 선택이 있을까.
장엄미사는 단순한 종교음악이 아니다. 가톨릭 미사 통상문을 텍스트로 삼았지만, 그 안에는 한 인간이 시대와 운명을 향해 던진 근원적 질문이 담겨 있다. 신에게 바치는 찬가라기보다, 인간 스스로를 향한 고백에 가깝다.
베토벤은 후기로 갈수록 정치적으로도, 사랑에서도, 건강에서도 깊은 실망을 경험했다. 계몽주의의 이상은 현실 권력 앞에서 왜곡되었고, ‘불멸의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 속 열정은 끝내 삶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청력을 거의 상실하며 그는 점점 고립되었다.
그러나 베토벤은 그 고립을 절망으로 남겨두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안에서 더 깊은 사유를 길어 올렸다. 인간 이성과 존엄에 대한 신뢰, 계몽주의적 이상은 종교적 형식을 통해 한층 더 확장된다. 장엄미사는 교리를 반복하는 작품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의미를 묻는 음악이다. 악보에 남긴 “마음에서 우러나와, 다시 마음으로”라는 문장은 단순한 헌사가 아니다. 고통과 실망을 통과해 도달한 믿음의 언어다.
두다멜의 지휘는 정적이지 않았다. 그는 단상 위에서 거의 도약하듯 몸을 던졌다. 두 팔은 쉼 없이 음악을 밀어 올렸고, 눈빛은 오케스트라와 합창을 끝까지 붙들었다. 그러나 그 격렬함은 과장이 아니라 집중의 산물이었다. 그는 템포를 과시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 각 성부의 결을 정교하게 맞물리게 하며 긴장과 해방의 흐름을 설계했다. 특히 ‘Credo’의 집요한 반복은 신앙 고백이라기보다 질문처럼 들렸다. 믿는다는 말이 아니라, 끝까지 붙드는 의지처럼.
스페인에서 온 합창단은 이 거대한 구조의 중심축을 단단히 세웠다. ‘Gloria’의 환희는 밝되 가볍지 않았고, 음향은 화려하기보다 밀도 있었다. 선명한 라틴어 딕션과 치밀한 성부 균형은 복잡한 대위 속에서도 투명함을 잃지 않았다. 이 미사의 영적 긴장을 지탱하는 기둥과도 같았다.
솔리스트 가운데 한국인 테너 백석종이 그 역사적 무대에 함께 했다는 사실은 더욱 뜻깊었다. 그는 고음을 힘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맑고 곧은 선으로 그려냈다. 합창과 오케스트라 사이에서 튀지 않으면서도 분명한 존재를 드러냈고, 섬세한 프레이징으로 음악의 결을 매끄럽게 이어갔다. 세계적인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함께하는 이 상징적 무대에 한인 성악가가 당당히 자리했다는 사실은 개인적으로도 큰 기쁨이었다.
무엇보다 ‘Agnus Dei’가 오래 남는다. 평화를 구하는 기도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절박한 요청처럼 울렸다. 베토벤은 이 악장에 전쟁을 암시하는 불안한 리듬을 삽입했다. 평화는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 고통을 이겨내는 간절한 마음으로 붙들어야 함을 역으로 강조하는 게 아니었을까. 두다멜은 그 긴장을 끝까지 유지했다. 덕분에 이 장엄미사는 박제된 걸작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을 비추는 현재형 언어처럼 들렸다.
베토벤은 후기의 실망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신뢰를 결코 거두지는 않았다. 그의 예술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고뇌 끝에 도달한 확신이었다. 그렇게 마음의 평화를, 평정심을 유지하는 방향을 제시한다. 두다멜이 20년의 시간을 마무리하며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 역시 그 지점에 있을 것이다. 분열과 갈등이 일상이 된 시대, 가장 어려운 곡을 통해 가장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 그것이 그가 LA 필과 함께 남기는 마지막 선언처럼 느껴졌다.
도약하는 지휘, 그리고 그에 응답하는 목소리들. 그날의 장엄미사는 종교를 넘어 인간의 존엄과 연대를 노래하는 음악이었다. 그리고 두다멜의 LA 필하모닉 마지막 시즌은, 베토벤의 고뇌와 예술적 승화에 기대어 또 하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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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아 문화 칼럼니스트·YASMA7 대표>